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조금 손해 봐도 괜찮아 / 조수선

조수선 (수산나ㆍ조각가ㆍ제1대리구 용인본당),
입력일 2020-05-12 수정일 2020-05-12 발행일 2020-05-17 제 319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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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동안 그래도 큰 소리 없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두 아이 중 한 아이에게 부탁한 일을 꼭 서로 불러서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번은 점심을 먹고 아이들에게 식탁 정리와 설거지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밭에 잠시 나갔다 들어왔는데 정리가 되어 있지 않고 그대로였습니다. 저녁을 준비해야 할 시간인데 싱크대에 가득 쌓여있는 설거지를 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아이들을 불러 다시 부탁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줘”라고 말했지만,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았습니다. 조금 큰 소리로 다시 부탁하니 작은 아이가 먼저 나왔습니다. 그리고 싱크대에 서서 무언가를 하고는 TV 앞에 앉아 기다리던 프로그램을 시청했습니다. 저는 ‘다 했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싱크대에 다다라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설거지를 반만 한 겁니다.

요즘 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니 종종 이런 모습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식사를 준비하자고 하면 “내가 수저 놨으니까 언니는 밥 퍼”, 또는 “내가 반찬 놨는데 넌 뭐 했니?”라는 말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 와중에 설거지가 반만 되어 있다니….

도대체 너무 궁금했습니다. ‘혹시 이게 서로 평등하다고 느끼는 걸까?’라는 마음에 아이들 생각을 듣고 싶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이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아이는 “나만 다 하는 건 좀 그런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물으니, “나는 설거지 할 그릇도 가져다 뒀고, 식탁도 닦았는데 언니는 한 게 없어. 언니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언니 몫을 남겨둔 거야.”

우리 부부는 서로를 바라봤습니다. ‘혹시 우리가 이런 모습을 보였던 걸까?’ 생각됐습니다. 남편은 시간 날 때마다 집안일을 도와주려 노력하는 사람이고, 함께 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던 것 같은데 아이들은 좀처럼 서로에게 양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일들을 예로 들며 아이들에게 설명하니 큰 아이가 “잘못했다”고 말합니다. 정말 큰아이는 이해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좀처럼 설명이 먹히질 않았습니다. 그래도 “뭔가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조금 손해 봐도 괜찮다”고 이야기 해 줍니다.

5월은 가족의 달입니다. 혹시 저도 아이들처럼 ‘제가 해야 할 일을 다른 형제들에게 미루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부모님께, 은사님께 미뤄뒀던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조수선 (수산나ㆍ조각가ㆍ제1대리구 용인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