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사제단상] 달걀안에 숨어있는 진리-「나」의 껍질을 깨고 부활의 삶 살아야

입력일 2020-05-10 수정일 2020-05-10 발행일 1989-03-26 제 1648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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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인 1965년에 경남삼랑진 본당에서 첫 사제 생활이 시작되었고 이듬해 1966년 봄에 사제로서 처음으로 부활을 맞이하였다. 그때 함께 계시던 수녀님이 조그마한 소쿠리에 예쁜 그림을 그린 달걀 몇 개를 가져와 부활을 축하 하였다. 나는 그림이 너무 예뻐서 그대로 책상위에 몇 달이고 놓아두다, 마침내 다음해 성주간을 맞이하였고 성주간 첫날 월요일 아침 부활강론을 준비하려 책상에 앉으면서 작년 부활달걀을 보았다. 일년 동안 놓아두었으니 썩었을 거라 생각하면서 달걀을 집어드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달걀이 아주 가벼웠다. 볼펜 끝으로 한 개를 톡톡 깨어 구멍을 뚫었더니 달걀의 내용물은 하나도 없고 완전히 껍질뿐이었다.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다. 어떻게 해서 흰자위와 노른자위가 깡그리 없어졌는지 이때부터 나는 달걀을 보면 부활을 조명해보곤 한다.

사순절과 부활

암탉이 삼주야 동안 달걀을 품고 있는 시기를 나는 사순절에 비교해 본다. 사순절에 우리의 나쁜 습관을 고치고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면서 희생, 극기하며 금육과 단식을 지키며 기도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사랑과 은총이 풍성한 하느님의 사랑의 나래아래서 정성과 노력을 다해 스스로 나 자신의 껍질을 벗어보겠다고 애쓰기 때문이다. 재의 수요일 제2독서도『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달걀과 나 자신

달걀의 껍질을 깨고 나오면서 병아리의 새 삶이 시작되듯이 나도「나」라는 껍질을 깨는 길이 바로 사는 길이요 부활의 삶으로 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나」라는 껍질 속에 싸여 있을 때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저 달걀처럼 내정신은 송두리째 증발되고 말 것이다. 아름다운 그림으로 껍질만 쓰고 있는 생명 없는「달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바로 이것이다.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 살아가면서도 정신은 자꾸만 자꾸만 썩어가 마침내 기름진 육체에 아름다운 옷을 걸치고『날 좀 보소』하는 괴물이 되리라!

나와 너가 함께

「나」라는 껍질을 깨고 내가「나」안에서 나오지 않을 때 어떻게 너와 함께 더불어 살수 있겠는가? 그리스도는 인간을 사랑했기에「나」그리스도를 깨고「너」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나」를 깨어 없앴기에 새 생명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나」라는 껍질 속에 있는 나는 누구인가?

답은 간단하다.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나」이다. 이기적인「나」이기에 항상「나」만을 생각한다.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항상「나」만의 이익을 추구하고 항상「나」만의 행복을 원한다. 받아도 받아도 늘 모자라는「나」, 늘 부족한「나」. 이렇듯 만족이 없으니 항상 마음속엔 불만과 불평이 가득하여 행복이 없다. 그러기에「나」라는 껍질을 벗는 길이 부활의 길이요 행복의 길이다.

오늘도 노력한다

인간의 삶의 근본은「당신」이 존재하기에「내」가 존재함이다. 인간은 창조되었다는 말이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삶의 태도는 사랑의 태도요 공동체적 삶이다 공동체적 삶은 사랑으로 더불어 행복하게 살며 당신이「나」를 있게 했기에「감사하는 삶」이다. 더불어 행복하게 사랑으로 감사하며 사는 삶이 또한 부활의 삶이다. 「나」라는 껍질 속에 싸여있으면 있을수록 나는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오늘도 나는「나」라는 껍질을 깨고 부활의 삶을 살아가려 노력한다. 어미닭이 오로지 달걀이 병아리가 되어나오기를 바라며「사랑의 희생」으로 따뜻이 품어 주듯 오늘도 주님은 성찬의 식탁에서 당신 사랑의 나래로 우리를 따뜻이 품어주고 먹여주심을 생각하며 나도 어서「나」의 껍질 속에서 나와야겠지.

한영일

<神父ㆍ부산 용호본당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