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세계의 검은 성모 마리아상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0-05-04 수정일 2020-05-06 발행일 2020-05-10 제 319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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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를 특별히 공경하는 성모 성월이다. 교회는 이 기간을 통해 우리 자신을 마리아께 봉헌하고 그 모범을 따라 살며 특별한 전구와 은총을 청하도록 한다. 한국교회를 비롯한 세계 각 교회에는 고유의 성모 신심 순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폴란드 쳉스토호바, 스위스 아인지델른, 독일 알퇴팅, 스페인 몬쎄랏, 브라질 아파레시다 등은 검은 성모 마리아로 눈길을 끈다. 성모 성월을 맞아 대표적인 검은 성모 마리아를 소개한다.

■ 폴란드 쳉스토호바 성모

항쟁의 중심에서 시련을 이겨내는 힘

폴란드 쳉스토호바의 야스나고라(Jasna Gora) 성 바오로 은수자회 수도원에 보존된 성화 ‘검은 성모’(Czarna Madonna)는 폴란드인의 신앙과 일치의 상징이다. 매년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순례객이 성화를 보기 위해 야스나고라 수도원을 찾는다.

수도원의 가장 오래된 문서를 참고할 때, 이 성화는 4세기에 성녀 헬레나가 예루살렘에서 성 십자가를 찾던 중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성녀는 이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왔고, 벨즈를 거쳐 1382년 오폴레 공작 부아디수아프 오폴츠치크에 의해 최종적으로 쳉스토호바에 도달됐다. 전승은 성 루카가 그렸다고 전하지만 신빙성을 찾기는 어렵다.

17세기에는 성화가 기적을 일으켜 스웨덴 침략으로부터 수도원을 지켜줬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래서 1656년 4월 1일 폴란드 국왕 얀 카지미에슈는 르보브 대성당에서 검은 성모를 폴란드 여왕으로 선포했다.

성화 속 마리아는 뺨에 두 줄의 상처가 있다. 이는 1430년 개신교 후스파가 성화를 약탈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 한다. 수많은 화가가 흉터를 없애려 여러 번 시도했으나 상처들은 매번 다시 살아났다.

18세기에 폴란드가 독립을 지키지 못하고 주변 여러 나라에 의해 분할되는 등 고통을 겪었을 때 이 성화는 항쟁의 중심이 됐고 시련을 이겨내는 힘이었다.

■ 스위스 아인지델른 성모

‘살베 레지나’ 울려 퍼지는 은총의 경당

스위스 슈비츠시 북동쪽 아인지델른(Einsiedeln)의 성 베네딕도회 아인지델른 수도원 성당에는 검은색 목각 성모상이 모셔진 특별한 경당이 있다. 934년 공식적으로 설립된 수도원은 이 성모상으로 인해 스위스 최대 성모 신심 순례지로 꼽힌다. 14세기부터 유럽 순례자들이 신성시했다고 하는 성모상은 왕관을 쓰고 역시 머리에 왕관을 얹은 어린 예수님을 안고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호엔촐레른 백작 집안 출신의 마인라트 성인(St. Meinrad, ?~861)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은총의 경당’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수도자들은 매일 오후 4시30분 저녁기도 후 ‘살베 레지나’를 부른다. 이 수도원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발전시키고 악보 필사 기술을 전수한 중요 거점으로 알려진다. 그런 만큼 16세기경부터 아인지델른 수도원 안에서만 전승돼 왔다는 고유 음률에 맞춰 수도자들이 한 목소리로 부르는 ‘살베 레지나’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정수를 내보인다.

성모상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복장이 바뀌는데, 언제부터인가 각국 신자들이나 단체가 성모 마리아께 공경을 드리는 의미에서 옷을 봉헌하며 시작된 풍경이다.

성모 마리아가 검은색을 띠는 이유에 대해서 수도원 측은 많은 순례객이 촛불을 봉헌하고 기도하면서 그을음으로 변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 독일 알퇴팅 성모

기적 전해진 후 순례객 발길 이어져

독일 뮌헨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알퇴팅(Altoetting)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심장이며 유럽교회 본질 중 하나’라고 밝힌 성모신심 순례지다. 교황은 자신의 ‘정신적인 고향’이라고도 말했다.

이곳에 700년경 세워진 팔각형 모양 ‘은총 성당’에는 검은 성모상이 있다. 1489년 한스라는 아이가 물에 빠져 숨을 거두자 부모가 성모상 앞에서 기도한 후 아이가 살아났다는 기적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소식이 전 유럽에 퍼지면서 수많은 순례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계속해서 기적이 여러 차례 일어나며 은총 경당으로 불리게 됐다.

이 성모상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성 루페르트 주교가 바이에른 영주에게 처음 세례 준 것을 기념해 1300년경 제작됐다. 이후 이 경당은 바이에른 왕족의 세례 경당이 됐다.

■ 스페인 몬세라트 성모

루카 사도 조각해 베드로 사도 가져와

스페인 카탈루냐 주 몬세라트(Montserrat)산 중턱 성 베네딕도회 산타마리아 데 몬세라트 대수도원에서는 라 모레네타(La Moreneta) 검은 성모상을 만나 볼 수 있다. 검은 얼굴빛으로 인해 ‘흑인 성모’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전승은 루카 사도가 조각한 것을 베드로 사도가 스페인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이후 8세기경 아프리카 무어인이 지배할 때 동굴에 깊이 감춰둔 것을 880년경 우연히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성모상은 아기 예수를 무릎에 안고 오른손에 지구 모양 구슬을 들고 있는 형상이다.

몬세라트 성모는 12세기에 성모 발현과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확산하며 카탈루냐 지방의 성모신심 구심점이 됐으며 남유럽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레오 13세 교황은 이 성모를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 브라질 아파레시다 성모

숱한 기적으로 유명한 브라질 수호자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아파레시다(Aparecida) 성모 성당은 중남미 대표적인 가톨릭 성지이자 브라질의 최대 순례지다.

이곳의 검은 성모상은 1717년 10월 12일 성당 인근 파라이바 두 술 강에서 어부들에 의해 발견됐다. 고기를 잡지 못해 애를 태우던 이들은 40㎝ 정도의 테라코타 성모상을 건진 후 많은 고기를 잡게 됐고, 이후 집에 모셔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는데 불구자가 두 발로 서는 등 숱한 기적이 일어났다.

삽시간에 소문이 나며 많은 이들이 모여 기도하고 많은 은총을 받았다. 강에서 발견됐다고 해서 이 성모상을 ‘아파레시다’ 즉 ‘나타나심’이라는 뜻으로 불렀다. 비오 11세 교황은 1830년 아파레시다 성모를 브라질 수호자로 선포했다. 1904년 이후 성모상에는 지금과 같이 왕관이 씌워지고 푸른색 망토가 입혀졌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