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 묵상] 참된 삶의 길은 ‘사랑의 디딤돌’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입력일 2020-05-04 수정일 2020-05-06 발행일 2020-05-10 제 3194호 1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부활 제5주일
제1독서(사도 6,1-7) 제2독서(1베드 2,4-9) 복음(요한 14,1-12)
그리스도는 ‘선택된 값진 머릿돌’
하느님 백성으로 값진 돌이 되려면 빛의 자녀답게 사랑의 삶 살아야
예수는 하느님과 친교 이루는 길로 인간 존재의 참된 삶의 길과
진리 안에 있는 생명의 길을 계시

오늘은 부활 제5주일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그리스도께서 사랑의 친교를 이루는 참된 삶의 길임을 계시하십니다. 삶의 궁극 목적인 ‘행복으로 가는 길’이기에 마음에 간직합니다. 이 말씀에 머물다 보니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하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고별인사가 생각납니다.

젊은 시절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고 공감한 한 정신과 의사가 쓴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삶은 고해다”로 시작됩니다. 영적 성장의 길은 평생 걸리는 머나먼 배움의 길인가 봅니다. 주님의 길을 따라가면 행복할 텐데 우리의 마음은 산란합니다. 삶은 힘들고 어깨의 짐은 무겁습니다. 인생은 ‘고해(苦海)’이기 때문일까요?

오늘의 제1독서의 말씀은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 홀대를 받았기에 그리스어를 쓰는 유다인들이 히브리어를 쓰는 유다인들에게 불평합니다. 공동체 생활에서 분배에 인간적 약점이 드러난 모습입니다. 열두 사도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일곱 봉사자(부제)를 뽑아 안수하여 사랑의 봉사직무를 맡기고,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충실하니 교회는 더욱 성장합니다.

오늘의 제2독서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예루살렘 성전의 “살아 있는 돌”이심을 밝히십니다. 주님께서 “시온에 놓으신 돌, 품질이 입증된 돌, 튼튼한 기초로 쓰일 모퉁이의 값진 머릿돌(이사 28,16)”이십니다. 세례로 주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교회(‘영적 집’)에서 보편사제직을 수행하는 “살아 있는 돌”로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바칩니다(1베드 2,5).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이 돌은 “차여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걸려 비틀거리게 하는 바위”(1베드 2,7; 이사 8,14)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가 교회 건설에 쓰임새 있는 값진 돌이 되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바치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빛의 자녀’답게 사랑의 삶을 사는 ‘디딤돌’이 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요한복음이 전하는 오늘 복음은 예수님 고별담화(요한 14-17장)의 시작입니다. 성경에는 야곱, 모세, 바오로 사도 같은 주요 인물들이 마지막 떠날 때 후손에게 들려주는 여러 이야기(창세 49장, 신명 31-33장, 사도 20장)가 있습니다. 마지막 떠나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영원한 친교를 이루는 길임을 보여주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인간 존재의 ‘참된 삶의 길’, 진리 안에 있는 생명의 길을 계시하신 말씀입니다.

마지막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신과 으뜸 제자인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을 예고하십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산란함을 아시고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믿고 또 믿으라고 당부하십니다.

프라 안젤리코의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1433).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요한복음은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하느님의 외아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 ‘생명의 빵’, ‘영원한 생명의 말씀’, ‘세상의 빛’, ‘메시아’, ‘착한 목자’, ‘부활이요 생명’, ‘참포도나무’(요한 1,14.29; 6,35.68; 8,12; 9,22; 10,11; 11,25; 15,1)로 전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합니다. 바로 그 성경이 예수님을 위한 증언입니다(요한 5,39).

공생활 동안 함께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요한 14,4)”라고 상기시키지만 형상을 중시하는 토마스는 그 길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 가는 유일한 길(요한 14,6)임을 단언하시나 체험을 중시하는 필립보는 알아듣지 못하고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한 제자가 모른다기에 예수님은 “너는 나를 모른단 말이냐?” 하고 주의를 환기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하느님을 압니다(요한 8,19).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 하신 주님 말씀을 믿지 못하면 하신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으라 하십니다(요한 14,9-11). 말씀대로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이십니다.

예수님의 삶은 언제 어디서나 사랑입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조건 없는, 완전하고 보편적인 사랑이며, 삶의 의미를 되찾고 기쁨이 충만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가 하느님의 계시이고 사랑이십니다(가톨릭 교리 478, 609). 주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사랑의 새 계명을 주신 예수님께서는 길이십니다. 그 길은 인간 존재가 아버지를 직접 뵙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사랑하면 모습이 닮아간다고 합니다. 우리의 품위는 사랑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새 성전에 “선택된 값진 머릿돌”이십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가 주님의 도구가 되어 모든 이들이 딛고 오르내리는 ‘사랑의 디딤돌’이 되면 “그분의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입니다(요한 14,12).”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