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존엄성을 위협받는 사람들 (1) 여성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20-04-27 수정일 2020-04-28 발행일 2020-05-03 제 3193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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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딸이자 생명 품을 몸… 누가 여성을 사고파는가
5월 첫째 주일은 ‘생명 주일’
인간 존엄·생명 가치 기리는 날
더나은 삶 위해 함께 노력해야

n번방 사건으로 여성 착취 조명
몰카 등 일상적 공포도 만연 
남성 중심의 사회 되돌아 볼 때

교회 내 남녀평등도 고민 필요
사목 위원 등 외적 참여 늘었지만
실질적 결정권·자율성 살펴봐야

오늘(5월 3일)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불가침성을 수호하기 위한 ‘생명 주일’이다. 교회는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기 위해 1995년부터 5월 마지막 주일을 ‘생명의 날’로, 2011년부터는 이를 5월 첫째 주일로 바꿔 ‘생명 주일’로 기념해 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텔레그램 n번방·박사방 사건에서처럼 디지털 성 착취를 당하고 있는 여성들, 두 아이 방임 치사 사건에서처럼 태어나자마자 죽음에 이르고 있는 아동들, 요양원 노인 학대 사례들에서처럼 보호받아야 할 상황에 도리어 구타당하고 있는 노인들이 대표적이다.

생명 주일 10년, 이들의 존엄성이 위협받는 현실과 그 원인, 이들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한 교회의 역할들에 대해 격주로 살펴본다. 첫 순서는 ‘여성’이다.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

2018년 서울 종로구 혜화역 등지에서 ‘편파 판결, 불법 촬영 규탄 시위’가 열렸을 때 참가자들은 이 같은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었다. 남성들은 일상 속에서 몰래 카메라(몰카) 걱정 없이 삶을 살아가지만, 여성들은 화장실은 물론 탈의실에서도 몰카 걱정을 해야 하고 심지어는 집에서도 몰카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지적이었다.

당시 시위 참가자들은 ‘홍대 누드모델 몰카 유출 사건’에 대해 불법 촬영의 피해자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수사가 강경했다면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시민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인간 그 자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일상이 함부로 노출되고 있으며, 이는 남성 중심의 풍토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이때 시위를 주최한 ‘불편한 용기’ 측은 “우리는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 상품으로 소비되는 여성

당시 시위 현장에서 일부 혐오 발언들이 논란이 되긴 했지만, 여성이 인간 그 자체로서 존중받기보다 성 상품이나 물건으로 소비돼 온 현실은 한국 사회에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의 텔레그램 n번방·박사방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최대 26만 명의 사람들은 성인 여성, 나아가 아동·청소년 여성까지 ‘노예’라고 부르면서 디지털 성 착취를 일삼아 왔고, 지난해에는 여성의 가슴을 포함해 신체 중요 부위는 물론 얼굴까지 원하는 대로 맞춰 제작할 수 있는 ‘리얼돌’ 수입이 허가되기까지 했다.

여성 당사자와 여성의 몸·성이 음지에서뿐만 아니라 대법원 판결을 통해 공공연하게도 한국 사회에서 성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 남성 중심의 사회

이렇게 음지에서 또는 공공연하게 여성이 성 상품으로 소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련 전문가들은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 탓이 적지 않다고 설명한다.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주요 권력들은 남성들이 독차지해 왔고 발언권도 대부분 남성들이 지니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이 채우고 난 빈자리를 채우거나 필요에 따라 사용되거나 버려지는 부차적인 존재로 인식돼 왔고, 심각하게는 성 착취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2004년부터 성매매 예방·축소·감시 활동을 펼쳐 온 서울특별시립 다시함께상담센터 김민영 소장은 “여성을 재화로 삼는 흐름은 늘 있어 왔다”며 “국가는 성매매를 법으로 금지해 놓고도 힘있는 나라의 군인들을 위한 성매매 클럽은 예외 지역으로 하거나 그 클럽의 여성들에 대한 성병 관리를 직접 해주는 등 법과 제도가 여성을 재화로 삼기에 충분하도록 오랫동안 뒷받침해왔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지금도 성매매 집결지는 존재하지만, 국가는 법으로만 금지하고 남성들은 온라인에서 성매매 후기를 공유하는 등 이런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는 것은 남성으로 대표되는 사회 구성원들이 이 시스템을 유지하길 바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여성들은 이런 상황에서 계속해서 피해를 보고 존엄이 훼손되고 있다”고도 밝혔다.

■ 여성 대표성 확대·성인지 감수성 높여야

때문에 여성이 성 상품으로 소비되지 않고 인간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사회에서는 여성의 대표성부터 확대하고, 구성원 개개인은 ‘성인지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성 착취 피해 청소녀들을 위한 씨튼해바라기집의 시설장 최연화 수녀(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사람을 상품으로 취급하고 여성보다 남성이 설 자리가 많은 사회에서 여성, 그중에서도 여자 아이들은 쉽게 배제되고 자신의 생명인 성을 내주면서까지 존엄성을 침해받고 있다”며 “이들의 존엄성을 수호할 수 있도록 여성이 목소리를 낼 기회와 참여할 자리가 더 많아져야 하고, 이들에 대한 촘촘하고 세세한 돌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히 2018년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정기 학술 세미나에서 ‘여성 친화적인 교회를 향한 시대의 징표’를 주제로 발표한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박은미(헬레나) 대표는 “1995년, 2004년, 2013년 이렇게 10년 간격으로 이뤄진 세 차례 설문 조사에서 ‘의사 결정 과정에서의 참여’와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구조로의 변화’를 가톨릭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요청했다”며 여성의 존엄성 수호를 위한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박 대표는 “본당의 여성 사목 위원 비율이 증가하는 등 외적으로는 여성의 참여가 늘었지만, 여성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여성 상황에 공감하는 교회의 모습에는 이르지 못했다”며 “여성 친화적인 교회를 수립하는 일은 어려움에 처한 신자의 상황에 시선을 주고 경청, 공감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2015년 2월 7일 교황청 문화평의회 총회 참석자들에게 전한 메시지에서 “여성은 문화·사회적인 면에서 특별하고 상호 교류적인 감수성을 갖추고 있으므로, 교회 생활에서 여성들에게 그들의 영역을 제공하고, 여성들을 평등하게 받아들일 필요성이 있음을 확신한다”며 “여성의 존재가 공동체 안에서 더욱 확산되고, 그로 인한 결과가 더욱 효과적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교황은 이 메시지에서 “사회나 교회에서 여성이 공동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여성에게 선택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해 주어야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