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프란치스코 교황이 만난 성모님

정정호 기자
입력일 2020-04-27 수정일 2020-04-28 발행일 2020-05-03 제 3193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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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을 특별히 공경하며 지내는 성모 성월이다. 성모 발현에 따라 전 세계에는 다양한 모습의 성모님이 알려져 있고, 교리나 전승에 따라 여러 축일이나 신심 또한 생겨났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두터운 성모 신심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직접 방문한 성모순례지 역시 여러 곳이다. 그 중에서 특별히 올해 새롭게 기념일로 지내게 된 이탈리아 ‘로레토의 성모’와 우리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진 아일랜드 ‘노크의 성모’를 소개한다.

■ 로레토의 성모(Our Lady of Loreto)

‘강생의 신비’ 깊이 묵상할 수 있는 거룩한 집

주님 탄생 예고 이뤄졌던 ‘성모님의 집’

천사들이 나자렛에서 옮겨놓았다 전해져

‘세상 밖 향한 교회’ 실현 상징적 의미 커

2019년 3월 25일 이탈리아 로레토 성모순례지에서 기도하는 교황. CNS 자료사진

로레토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성모순례지로, 아드리아해 연안의 작은 도시다. 이 지역엔 월계수가 특히 많아 지명 역시 월계수를 뜻하는 ‘라우레툼’(Lauretum)에서 유래했다.

이곳이 유명한 성모순례지가 된 것은 ‘성가’(聖家, Santa casa), 바로 ‘성모의 집’ 덕분이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할 것이라고 예고했던 그 집이다. 나자렛에 있어야 할 이 집이 어째서 이곳에 있게 된 것일까? 전승에 따르면 1291년 이슬람의 침공 당시 천사들 손에 의해 달마티아(오늘날 크로아티아 지역)의 테르사토로 옮겨졌고, 이후 1294년 다시 천사들에 의해 로레토의 언덕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동안 세간은 물론 교회 내에서도 진위여부에 대한 비판이 제기돼 오기도 했지만, 20세기 초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이 집이 1291년 이전 건축된 것을 재조립한 것이며, 나자렛에 있는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 동굴 앞의 입구 벽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사실 전승의 진위여부를 떠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깊이 묵상해야 할 ‘강생의 신비’일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3월 25일 이곳을 방문해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면서 “거룩한 집인 만큼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육화하신 그 신비를 관상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라고 말했다. 특별히 교황은 12월 10일을 ‘로레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새롭게 지정했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교령을 통해 “로레토의 이 순례지는 강생의 신비를 되새겨 준다”고 강조하고 이 축일이 “모든 이들, 특히 가정과 젊은이와 수도자들이 복음의 완벽한 제자이시며 교회의 머리를 잉태하시면서 우리도 당신 자녀로 품어 안으신 동정 성모님의 덕행을 본받게 도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로레토의 성모순례지는 성 요한 23세 교황의 방문으로도 유명하다. 당시만 해도 교황들은 결코 바티칸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성 요한 23세 교황이 그 틀을 깨고 처음 방문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1962년 10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직전에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기 위해 로레토를 찾았다. 이후 이곳은 ‘밖으로 향하는, 세상을 향하는 교회’ 정신을 실현하는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큰 장소가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이 의미를 잘 알고 있으며, 그 스스로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교황이 ‘로레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을 새로이 지정한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 노크의 성모(Our Lady of Knock)

성찬례 중요성 알려 주신 ‘침묵의 성모님’

보통의 성모 발현과 달리 메시지 전혀 없어

발현 모습 통해 신앙의 본질과 핵심 일깨워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해 ‘아동성폭력’ 사죄

2018년 8월 26일 아일랜드 사목방문 당시 노크 성지에서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CNS 자료사진

아일랜드 서부에 있는 작은 마을 노크는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성모순례지다. 140여 년 전인 1879년 8월 21일 마을 주민 다수에게 성모님이 발현한 곳이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들이 발현을 목격했다.

이곳의 성모 발현은 특이하게도 언어로 전달된 메시지가 없고, 성 요셉과 성 요한 사도가 함께 나타났다. 흰옷을 입은 성모님이 기도하는 가운데 오른편에 성 요셉, 왼편에 성 요한 사도가 함께 서 있었으며, 십자가와 함께 제대 위에는 어린 양이 있었고 천사들이 그 주위를 돌고 있었다고 한다.

이 발현 장면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과 핵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바로 교회의 원형이신 성모님과 ‘헌신적인’ 교회의 수호자인 성 요셉, 하느님 말씀의 선포자 요한 사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 위 어린 양 모습을 통해 성찬례의 중요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는 가혹한 형법과 과도한 소작료 등으로 착취당하고 있었고, 대기근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모님의 발현은 신자들에게 커다란 힘이 됐고, 미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노크 성지는 성모 발현 기념 대성당을 중심으로 잘 조경된 초록빛 정원에 십자가의 길과 성모 발현 경당, 산책로, 고해소 등을 갖추고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79년 발현 100주년을 맞아 이곳을 방문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일랜드 사목방문 중이던 2018년 8월 26일 이곳을 찾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시 성모 발현 경당에서 세상의 모든 가정들을 위해 기도하고, 황금 묵주를 노크의 성모님께 봉헌했다. 특별히 교황은 성직자들의 아동성폭력 문제로 비난을 받던 당시 상황에서 용서를 청하고, “성모님께서 모든 고통받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기도드린다”면서 “특히 성모상 앞에서 아일랜드 교회 성직자들이 행한 모든 학대의 생존자 및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고 전했다.

소개한 두 곳 외에도 다양한 모습의 성모 발현과 전승이 있었던 만큼 교회 안에는 다양한 형태의 신심이 생겨났고, 또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사적 계시나 기적에 치우쳐 자칫 그릇된 신심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진정한 신심은 “쓸모없고 일시적인 감정이나 허황한 맹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참된 신앙에서 나온다”(교회헌장 67항)는 것을 잊지 말자. 올바른 성모 마리아 공경을 위해 필요한 것은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얻는 것보다 어머니 마리아를 참으로 사랑하는 일”이며 “그분을 진정으로 공경하는 것은 그분께 꽃다발이나 초를 봉헌하는 일보다도, 그분처럼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일”이다.(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올바른 성모 신심」)

정정호 기자 piu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