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33) ‘나에게 말을 걸다’(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0-04-27 수정일 2020-04-28 발행일 2020-05-03 제 3193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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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통증이 심해서 동네 정형외과를 찾아갔더니, 비만이 너무 심해 엑스레이(X-Ray) 촬영을 한 번에 하기가 어려웠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내 귀를 의심케 했습니다. ‘아니, 내가 그렇게, 그토록 비만이었어!’ 나의 머리도 복잡해지면서, ‘비만’이라는 단어가 나이 의식, 무의식을 지배하며 충격의 도가니로 빠트렸습니다. 그 날 의사 선생님께로부터 엑스레이 검사 결과도 들었고, 약도 타고, 물리치료도 받았지만, ‘심한 비만’이라는 단어에만 꽂혀 울적함만 밀려왔습니다.

‘그 옛날, 젊을 때에는 그렇게 산을 좋아했고, 산 속을 뛰어 다녔는데. 학교 다닐 적에는 하루 중에 반은 운동만 하며 지냈던 것 같은데. 날씬한 몸에 빠르고 날렵하기도 했는데. 팔의 힘도 세고 정상적으로 탄탄한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비만이라니! 그래서 허리 엑스레이를 찍는데, 배가 너무 나와서 제대로 촬영조차 할 수 없다니. 이렇게 부끄럽고, 창피스러울 줄이야.’

씁쓸한 마음으로 사제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몸의 균형을 다시 잡아보자고. 내 몸의 중심을 잡아보는 운동을 해보자는 결심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결심의 시작으로 방으로 돌아온 나는 맨 먼저, 예전에 40개, 50개를 거뜬히 했던 팔굽혀펴기를 시작했습니다. ‘몇 개를 할 수 있을까….’ 미소를 짓고, 심호흡을 한 후, 30개 정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팔굽혀펴기를 했습니다. ‘하나…’하고, 팔을 굽혀 몸을 내렸는데, 그만 ‘털썩-’ 바닥에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팔굽혀펴기 한 개, 아니 한 개도 못했습니다.

다시금 충격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팔굽혀펴기를 한 개도 못했다는 사실이 현실이 아닌 줄로만 알았습니다. 슬픈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고, 책상에 앉아 ‘휴…!’ 긴 한숨을 쉰 채, 내 몸에게 말했습니다.

‘내 몸아, 미안! 솔직히 말해서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네 몸을 망가트린 것 인정해. 공부 핑계로 책상에만 앉아있었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가까운 시민 공원에 가서 걷는 것조차도 하지 않았고. 정말 미안해.’

그렇게 멍하게 있는데, 내 몸이 나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석진아. 자책만 하지 말고, 지금 다시 시작해 봐. 음, 팔굽혀펴기부터 해 보자. 음, 오늘은 단지 한 회만 시도를 하는 거야. 욕심 내지 말고, 그리고 내일은 두 회를 시도하고. 그 다음 날에는 천천히 삼 회에 도전해 보는 거야. 어때! 그렇게 해 보려는 작은 시도들이 어쩌면 몸의 균형을 잡아 줄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바로 지금부터 시작을 해 보면 어때.’

그 날로 나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첫 날, 팔굽혀펴기 한 개를 성공했습니다. 머릿속으로 ‘이까짓 것, 이 정도 쯤이야’하는 교만한 생각을 버리고, 하루에 한 개씩만 늘렸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10일이 되자 열 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20일이 되니, 스무 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한 달이 되니, 서른 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팔굽혀펴기 서른세 개를 하는 순간, 위기가 와서 하루에 한 개씩 늘리는 것은 멈추었습니다. 왜냐하면 서서히 힘이 들자, 한 개씩 늘리려는 마음에 ‘피곤함’이라는 꾀가 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매일 팔굽혀펴기 서른세 개만 하는데도, 놀라운 건 배도 많이 들어가고 허리도 낫고 목 디스크도 좋아졌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가끔은 몸이 자신에게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 40대가 넘으면 분명, 몸이 자신에게 말을 할 겁니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잘 돌보라고.’ 나에게 말을 거는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바뀌리라 생각이 듭니다. 내 몸이 하는 말을 듣고, 매일 팔굽혀펴기를 서른 세 개씩만 하는데도 이렇게 삶이 바뀌니, 몸이 하는 말, 잘 들으면 좋을 듯합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