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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늦깎이’ 사제서품 앞둔 어느 수사의 성소 이야기 - 카푸친 작은형제회 김태형 수사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0-04-27 수정일 2020-04-28 발행일 2020-05-03 제 3193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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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에 나이가 있나요? 부르심 느낀다면 문 두드리세요”
사회적 성공 위해 쉴새없이 달렸던 삶 어머니 쓰러진 뒤 꼬박 1년 간절히 기도
‘오상의 비오’ 성인 알게 된 뒤 성소 확신
늦게 시작한 만큼 더 소중한 수도생활 세대 차이 등 관계의 어려움도 있지만 하느님 사랑 지상에서 보여주는 공동체 함께 어울리는 형제애 통해 행복 느껴

성소를 느끼는 나이대가 정해져 있을까? 대부분의 교구와 수도회는 입회자격으로 나이제한을 두고 있다. 30대 중반이 넘어가면 입회자격 조건 밖이기 때문에 부르심을 느꼈어도 쉽사리 문을 두드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다소 늦은 나이에 응답하고 치열하게 성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김태형 수사(카푸친 작은형제회)도 그 중 한 사람이다. 38세에 입회해 50대에 사제품을 받게 되는 김 수사. 성소 주일(5월 3일)을 맞아 늦은 나이에 부르심을 받고 수도 성소를 살고 있는 김 수사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 어머니만 살려 주신다면, 남은 인생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

김 수사는 경상남도 사천 시골 출신으로 서울에 올라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쉼 없이 살았다. 그러다 개인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소위 대박이 났고 잠 잘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일이 밀려 왔다.

김태형 수사는 “형제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은총이며, 그때 느낀 영적 기쁨은 어떤 만족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충만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고 박차를 가할 무렵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차!’ 싶었다. 뒤를 돌아볼 여유 없이 달려 온 김 수사는 그제야 어머니와 가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걸음에 어머니에게 달려간 김 수사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 쓰러지신 어머니 모습을 보고 너무 충격 받았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제대로 된 밥 한번 못 사드렸는데….”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판공성사 정도만 보며 냉담에 가까운 신앙생활을 해 온 김 수사는 그때부터 기도를 시작했다. 아는 기도라고는 묵주기도가 전부였다. 하루 종일 묵주기도를 하며 어머니 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이 세상에 인간이 할 수 없고 하느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신앙을 되찾을 수 있었죠.”

김 수사는 묵주기도뿐 아니라, 매일 미사에 참석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렇게 꼬박 1년을 매일 미사에 참례했다. 그러던 중 “지금까지는 저를 위한 삶을 살았지만, 어머니만 살려주신다면 남은 인생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라는 기도를 바쳤다. 그저 간절한 마음에서 터져 나온 기도였다. 김 수사는 “이 기도를 바친 게 성소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우연히도 주변에 수도원에서 살다 나온 사람들이 있었고 김 수사에게 수도 성소의 길을 권유했다. 김 수사는 그러한 권유들을 처음에는 흘려들었지만, 어느 순간 강렬한 이끌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상의 비오’라고 알려진 피에트렐치나의 비오 성인(카푸친 작은형제회·1887~1968)을 접하고는 성소의 확신을 가졌다. 김 수사는 “만약 비오 성인이 몸담은 카푸친 수도회가 한국에도 있다면 꼭 들어가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났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 당시 김 수사의 나이는 30대 중반이었고, 카푸친 수도회는 입회자격에 32세라는 나이제한을 두고 있었다. 김 수사는 자신이 없었지만, 강한 열망에 수도회 문을 두드렸고 수도회에서도 우선 만나보자고 연락이 왔다. 그렇게 1년간 성소모임을 다녔다. “성소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 게 너무 기뻤습니다. 매달 성소모임 날만을 기다렸고,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김 수사는 2009년 38세의 나이로 카푸친 작은형제회에 입회하게 됐다. 청원기와 수련기, 유기서원기를 거쳐 2014년에 종신서약을 발했다. 그리고 종신서원을 하고 며칠 후 어머니는 하느님 품에 안겼다. “주님께서 제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삶, 형제로 산다는 것

김 수사는 이렇듯 늦었지만 소중한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4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20대의 어린 형제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제가 그렇게 보수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세대 차이는 무시할 수 없더군요. 끊임없이 내려놓는 연습을 했습니다.”

김 수사는 여러 사회경험 안에서 수많은 관계를 맺어 왔지만, 수도생활 안에서 형제애는 또 다른 관계성으로의 접근을 필요로 함을 깨닫고 있다. “수도자는 자칫 작은 것이라도 간과하면 큰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큰 죄가 아닌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누군가에 대한 미움, 증오, 시기, 질투 등 영적, 심리적 해를 가하는 것들입니다. 수도 공동체는 하느님 사랑을 지상에서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으로 악을 행한다면 존재 의미가 없는 것이죠.”

그러면서 수도생활의 진정한 행복을 형제들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관계 안에서 위기도 느끼고 많은 감정들이 오고 가지만, 형제들과 어울려 함께 산다는 자체에 큰 의미가 있음을 강조했다. 김 수사는 “밖에서는 나와 성향이 맞지 않으면 피하거나 만나지 않을 수 있지만, 수도회 안에서는 미우나 고우나 부딪치고 함께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이런 상황 때문에 마음 속 예수님을 관상하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형제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은총이며, 그때 느낀 영적 기쁨은 어떤 만족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충만하다”고 고백했다.

“수도생활의 중심은 수도회의 영성도 아니고, 나 자신의 성취나 성인이 되겠다는 결심도 아닙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중심이 되면 모든 것은 따라옵니다.”

2014년 2월 김태형 수사(오른쪽)의 종신서원. 내년에 50세의 나이로 부제품을 받는다. 김태형 수사 제공

■ 또 다른 부르심, 수도사제

카푸친 작은형제회는 입회할 때부터 평수사와 수도사제의 길을 정하지 않는다. 수도회 영성과 형제애에 집중하기 위해 초기 양성과정이 끝나는 종신서원 후 신학교에 입학하도록 하고 있다.

김 수사는 수도자로서 받아들여지는 자체에 감사했기 때문에 사제성소의 삶은 바라지도 않았다. 아울러 성직자는 말을 잘하고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작은형제로서 조용히 살고 싶었던 김 수사는 평형제의 삶을 꿈꿨다. 하지만 카푸친 수도회의 사제들은 평형제와 다를 게 없었다. 김 수사는 “카푸친 사제 형제들을 보면서 사제가 되도 형제들에게 봉사하며 겸손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또 다시 부르심에 응답했다.

2014년 종신서원 후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교에 입학한 김 수사는 현재 대학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교육 과정상 50세의 나이로 내년에 부제품을 받게 된다. 20살 넘게 차이나는 교구 신학생들과 공부하고 있지만, 김 수사는 학부를 1등으로 졸업했다. 김 수사는 “그저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와 교구 신학생들에게도 미안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겸손한 마음을 전했다.

김 수사는 늦은 나이에 성소를 느끼는 것도 많은 장점이 있음을 밝히며 식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부르심을 느낀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식별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1년간 매일 미사에 참례한다든지 간절한 기도를 드리다 보면 감이 올 것입니다. 그때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문을 두드리십시오. 하느님과 깊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삶이 펼쳐질 것입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