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중독과의 만남 3 / 이중교 신부

이중교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입력일 2020-04-27 수정일 2020-04-28 발행일 2020-05-03 제 3193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이미 인터뷰를 해야 할 목표는 끝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이곳의 모임에 발길을 끊지 못하고 있다. 알코올중독환자가 아니기 때문에 경험담을 말할 수 있는 자격도 없다. 빙 둘러앉아 있는 그들의 자리가 아닌 참관자로서 구석에 앉는다. 그러나 이곳은 내게 많은 것을 전해준다. 그 울림이 있기에 발길을 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큰 울림은 간절함이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저처럼 술에 빠진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 여기밖에 없어요.’

깡마른 체구에 허름한 옷차림, 검은 때가 묻은 반 접힌 운동화. 누군가의 눈치를 자꾸 살피는 그의 눈에는 언제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어제 병원에서 나와 앞으로 술을 마시지 않으리라 다짐한 뒤 처음 이 모임에 나왔다고 한다. 그는 몇 번이나 병원을 들락날락하며 깨달았다.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그 누구도 자신과 같은 알코올중독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오직 자신들과 같은 처지인 여기 사람들만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기에 자신이 가야 할 곳은 이곳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 순간 그의 눈망울에서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함의 눈물이 내 가슴에 스미어 부끄럽게 만든다.

‘예수님이시라면… 교회는… 그리고 나는….’

알코올중독 회복자들은 결코 범죄자들이 아니다. 이미 단어에도 드러나 있듯이, 범죄의 동기를 지닌 사람은 회복자가 될 수 없다. 단지 알코올중독을 경험했고,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곳은 단지 이 모임밖에 없다.

상상해본다. 저분이 미사에 참례하면 신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물론 친구들과 만나러 가는 자리에서는 깨끗한 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하면서, 성당을 올 때는 꼬질꼬질 때가 묻은 신발에 누더기를 입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또한, 어느 누구도 저런 분들이 성당 문을 밀고 들어올 때 내쫓거나 말리는 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그를 환대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그의 옆에 앉아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반갑게 인사를 청하는 사람이 있을까?

살기 위해 문을 두드린 사람이다. 남을 해칠만한 힘도 없을 만큼 체구도 매우 작다. 그러나 미사 안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분이시다. 항상 단정한 옷차림을 공지하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정작 가난한 사람들이 올 수 있는 교회보다는 가난한 이웃을 생각해야 하는 교회가 되었다. 그 순간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문 너머의 사람들이 보였던 것이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곳이 없는 곳. 자신들에게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없는 곳. 그래서 그들이 찾은 모임이 바로 이 모임이다.

이중교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