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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한국가톨릭문학상 특집] 본상 - 이숭원 평론가 「구도 시인 구상 평전」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0-04-21 수정일 2020-04-21 발행일 2020-04-26 제 3192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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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의 삶’ 살았던 행적 되짚으며 눈시울 뜨거워져
문학에 중점 두고 쓰려다
구상 시인 인간미에 매료돼
존경의 마음으로 써내려가
한국가톨릭문학상 최초로
전기문학 장르 본상 수상

한국가톨릭문학상이 23회를 맞았다. 인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 문학 작품과 작가를 발굴하고자 1998년 제정된 한국가톨릭문학상은 그동안 교회 안팎에서 활동하는 뛰어난 문인들을 선정해 수상해왔다. 올해는 본상 수상작으로 이숭원 평론가의 「구도 시인 구상 평전」(2019, 분도출판사) 신인상 수상작으로 장재선 시인의 「기울지 않는 길」(2019, 서정시학)을 선정했다.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남대, 한림대, 서울여대 교수를 역임하고 서울여대 명예교수로 있다. 1986년 평론가로 등단해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유심작품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서정시의 힘과 아름다움」, 「정지용 시의 심층적 탐구」, 「초록의 시학을 위하여」, 「폐허 속의 축복」, 「감성의 파문」, 「백석 시의 심층적 탐구」, 「세속의 성전」, 「백석을 만나다」, 「영랑을 만나다」, 「시 속으로」, 「미당과의 만남」, 「한국 현대시 연구의 맥락」, 「김종삼의 시를 찾아서」, 「시간의 속살」, 「목월과의 만남」, 「몰입의 잔상」 등이 있다.

■ 이숭원 평론가는
전쟁이 끝난 뒤 혼란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대구에서 열린 문학인들과의 모임에 참여하기로 한 구상 시인이 약속 시간이 훌쩍 지나 모임 장소에 나타났다. 평소에 늦는 법이 없던 그이기에 동료 문인들이 이유를 묻자, “사람을 살리고 오느라 늦었다”고 답한다. 오는 길에 북한에 동조했다는 누명을 쓰고 고초를 겪는 이를 만나 그 혐의를 풀어주느라 늦었다는 것이다.

타인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못했던 구상 시인에 대한 미담은 이뿐만이 아니다. 무욕의 생활을 했던 시인 오상순의 묫자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그를 기리는 문학상을 만든 것도 바로 구상 시인이었다. 이권과 명예보다는 세상의 균형을 위해 삶을 바쳤던 구상 시인. 항상 인간을 향했던 그의 삶과 문학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여운을 남긴다. 제23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을 수상한 이숭원 평론가의「구도 시인 구상 평전」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실한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이다.

시조시인이셨던 아버지 덕에 구상 시인과 인연이 있었던 이숭원 평론가는 구상 시인을 “꾸며서는 될 수 없는 진실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삶과 문학이 일치된 문인’이라는 점이 평전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

“시조 관련 행사에 아버지가 기념사나 축사를 부탁드리면 잿빛 두루마기에 지팡이를 짚고 오신 구상 선생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어떤 자리든 늘 정성을 다해 축사를 남기셨죠. 이때 하시는 단골 메뉴가 바로 등가량의 진실이었습니다. 아무리 멋진 표현을 사용해도 그 표현이 가치를 가지려면 표현과 똑같은 양의 진실이 담겨있어야 제대로 된 문학이 된다는 것이죠. 평전을 준비하며 알게 된 사실은 구상 시인의 삶이 바로 그 말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이분처럼 일관된 자세를 취하며 문학세계를 펼친 작가는 없을 것입니다.”

구상 시인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글을 쓰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구상 시인을 기억하는 지인의 말, 사후에 전해진 그의 선행, 자신이 도왔던 사람을 위해 구상 시인이 남긴 따뜻한 말들을 되짚으며 이숭원 평론가는 책을 쓰면서는 처음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구상 시인의 문학에 초점을 맞추려던 평전의 방향이 바뀐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가 문학평론가이기에 처음에는 구상 선생의 문학에 중점을 두고 서술하려고 했죠. 그런데 작업을 진행하면서 선생님의 인간미에 매료되고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책의 서두에 술이부작(述而不作)의 태도로 쓰겠다고 했지만 구도의 일생을 보내신 선생님의 행적에 존경의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 주관적인 심정을 많이 드러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존경의 마음으로 써내려간 평전이기에 책 안에는 구상시인에 대한 진실과 진심이 모두 담겼다. 이중섭과의 관계, 시인의 인품에 대한 후일담 등 생전에 그를 기억했던 이들의 말들은 생생한 이야기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이러한 이유로 「구도 시인 구상 평전」은 한국가톨릭문학상 역사상 처음으로 전기문학 장르에서 본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됐다. 구상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문학세계를 되새기는 의미와 함께 구상 시인의 가톨릭신앙과 인간에 대한 성찰까지 사실 그대로 그려내며 객관성을 유지했다는 평을 받으며 본상에 결정됐다.

구상 시인의 삶은 문학으로 이어졌기에, 이숭원 평론가는 구상 시인의 문학적 가치도 책을 통해 풀어낸다.

“구상 시인은 자신이 깨달은 삶의 진실을 소박한 언어로 표현하는 데 전념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젊은 문학인들에게는 구상 시인의 작품이 낡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표현이나 화려한 수사가 없고, 교훈적이고 계도하는 내용이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이면에 담긴 가치들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문학을 하겠다는 윤리적 목적성을 강조한 점에서 구상 시인의 문학이 다른 문학과 구별되는 개성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인으로서도 모범을 보였던 구상 시인에 대해 이숭원 평론가는 “몸이 아무리 힘들고 고되더라도 기도는 빼먹는 법이 없었던 분”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다른 종교인과 소통하고 화합했던 구상 시인의 행적들이 바로 가톨릭 정신이 아닐까요”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저하고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한국가톨릭문학상을 받게 되니 기쁘기 그지없다”고 수상소감을 밝힌 이숭원 평론가는 “하늘나라에 계신 구상 선생님께서 수고했다고 주시는 상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다”고 전했다.

■ 수상작 「구도 시인 구상 평전」

삶과 문학 일치했던

구상 시인 모습 담아

흰 수염에 잿빛 두루마기. 평론가 이숭원이 기억하는 구상 시인은 늘 수수한 차림새였지만 진지한 표정과 곡진한 음성 탓에 주위를 집중시키는 인물이었다. 그가 곡진한 목소리를 내뱉는 순간은 바로 어려운 이들에 대한 도움을 호소할 때다. 자신의 일에는 무관심하면서 남을 돕는 데는 정성을 다했던 구상 시인.

「구도 시인 구상 평전」은 구도자라고 평가받는 구상 시인의 삶과 문학을 모두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구상 시인이 강조했던 문학적 가치는 ‘등가량의 진실’이다. 문학적 표현이 가치를 가지려면 그와 똑같은 양의 진실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구상 시인은 인간을 향한 진실한 삶의 태도를 잃지 않았다. “구상 시인은 문학과 삶의 일치를 보인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라고 평가한 이숭원씨는 “인간을 중심에 둔 그의 문학은 다른 문학작품과 구별되는 개성이자 강점”이라고 전했다. 인간다움의 가치를 향해 행동했던 구상 시인의 삶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