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부활절, 스무하루… 알렐루야!’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
입력일 2020-04-21 수정일 2020-04-21 발행일 2020-04-26 제 3192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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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일
제1독서(사도 2,14.22ㄴ-33) 제2독서(1베드 1,17-21) 복음(루카 24,13-35)
엠마오로 떠나는 제자들 모습에서 공동체 무관심 드러나
발 빠르게 뒤쫓아서 성경말씀 풀어 설명해주신 예수님
‘눈이 열려’ 주님 알아보고 예루살렘 공동체로 되돌아가
온 세상에 부활의 축복 널리 알리는 귀한 증인 돼야

솔직히 이번 부활절만큼 우여곡절을 겪은 적이 있을까 싶습니다. 성전 문이 닫히고 미사참례마저 할 수 없는 낯선 일상을 살아야했으니까요. 홀로 부활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의 모습이 주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을까 생각하면 먹먹할 따름입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아주 색다른 우리의 상황을 감안하시어 살피셨을 줄 압니다. 우리 마음에 더 다양하고 풍성한 묵상을 선물해 주셨다는 것을 압니다.

성전 문이 닫힌 그 때에도, 사제의 외로운 미사 안에서도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셨으니까요. 약속대로 온 세상에 당신의 부활을 선포하시며 힘과 용기를 선물해 주셨으니까요.

부디 이 글이 나갈 즈음엔 굴곡지고 매듭져 신음하던 세상이 완전히 치유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래서 아주 평범한, 그래서 더욱 소중한 우리의 매일을 되찾게 해주시기를 간곡히 청하며 이 글을 씁니다. 이 글이 나가는 부활 제3주일에는 우리 모두가 본당에서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감격하여 감사드리는 은총을 허락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며 이 글을 적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두어 주간 앞서서 원고를 넘겨야 한다는 게 곤란한 기분도 듭니다. 아마 이 글이 나갈 즈음이면 우리의 상황이 전혀 달라져 있을지 모르니까요. 아니 꼭 그리되기를 희망하며 소원하니까요.

오늘은 부활 제3주일, 부활을 맞고 스무하루 째가 되는 날입니다. 예전에 할머니께서는 출산한 집 대문에 삼칠일 동안 금줄을 치고 외부인 출입을 막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는데요. 서로가 조심조심…, 섣부른 축하 인사마저 삼가는 마음이라 하셨습니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 어려운 말씀이었지만 자라면서 그 의미가 마음에 담겼습니다. 이를테면 매사에 하늘의 뜻을 살펴 지내신 조상님들의 예의바른 지혜의 소산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기쁘고 좋은 일에서도 섣부른 축하마저 조심조심히 받으려는 마음가짐이었다는 걸 깨달았던 겁니다.

알토벨로 멜론의 ‘엠마오로 가는 길(1516~1517년)’.

오늘이 바로 부활절의 삼칠일 째 되는 날입니다. 이제 마음껏 부활을 기뻐하고 경축하며 신바람이 나서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즐거워해도 좋은 날인 셈입니다.

그리 생각하니 오늘 복음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정겹기만 합니다. 연이어 들려오는 주님의 부활 소식에도 제자들의 마음이 깨어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는 사실도 언짢지가 않습니다. 부활의 신비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여전히 어두웠던 제자들의 마음도 부활을 체험하지 못한 채 슬픔에 잠겨 늘어져있는 제자들의 모습까지도 덜떨어진 우리를 위해서 격려해주시는 주님의 다독임으로 읽힙니다.

사순시기 내내 우리도 그 때의 제자들처럼 칙칙한 분위기를 견디며 미사봉헌을 꼽아 고대하며 지냈습니다. 더러 예루살렘을 떠나기로 의견을 모았던 제자들처럼 뭔가 석연찮은 생각으로 마음이 혼란하기도 했습니다. 날이 밝기 무섭게 들려오는 코로나 19의 확산 소식에 몸도 마음도 움츠려 들기 일쑤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복음말씀에서 공동체를 떠나려는 이를 누군가가 나서서 강하게 말렸다거나 좀 더 기다리며 함께 기도하자고 권했다거나 서로를 위로하며 힘을 얻었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없다는 게 마음 쓰립니다. 이야말로 함께 있으나 일치하지 못했던 제자들의 썰렁한 분위기를 여실히 전해주니 말입니다. 오늘 두 제자가 떠나기로 결단했을 때에도 어느 누구도 붙잡지도 말리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니 말입니다. 한마디로 ‘갈 테면 가고’ ‘떠날 테면 떠나라’며 서로가 서로에게 방관자였다는 걸 알려주니 말입니다. 결국 제자공동체의 와해는 서로의 무관심이었음을 짚어주는 것이 아닐지요.

때문에 그 와중에도 발 빠르게 제자 두 사람을 뒤쫓으신 예수님이 고맙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인 제자를 위해서 정성을 쏟으셨다는 사실에 감격하게 됩니다. 그들이 믿음을 깨우치도록 성경말씀을 일일이 풀어 설명해주신 모습이야말로 복음 전파자의 태도임을 일깨워주신 것이라 싶습니다. 아울러 주님의 말씀으로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그들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예루살렘 공동체로 되돌아갔다는 점에 감동하게 됩니다.

그들을 돌아서도록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사도 1,4)는 주님의 당부를 기억했던 덕이었을 테니까요.

주님 부활의 가장 큰 은총은 이제 우리에게 성령이 선물되어진다는 진리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우리는 공동체를 떠나 엠마오로 향하려는 이들을 붙들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미 엠마오에서 삶을 꾸려버린 이들에게도 오늘 주님처럼 살갑게 다가가 함께 하는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은혜로운 이 주간, 주님의 부활을 한껏 찬미 드리는 빼어난 주님의 수제자의 삶을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지 삼칠일 째인 오늘, 교회 공동체에 부어주신 축복을 자랑하면 좋겠습니다. 먼저 우리 눈이 밝아지기를, 어떤 것보다 우선하여 우리 마음이 주님 사랑으로 차오르길 원하면 좋겠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교회의 평화와 선에 항구하는 덕을 갖춘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하여 우리 모두가 한층 아름다워진 삶으로 온 세상에 주님의 부활을 보고 만지고 확인시켜주는 귀한 증인이 되면 너무너무 좋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진짜로 고맙겠습니다(사도 2장 참조).

긴 시간, 홀로 본당을 지키며 정말 외로웠던 저희 사제들에게 굳건한 믿음으로 힘을 주신 세상의 모든 신자분들께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흠뻑 쏟아주시길 기도드립니다. 덧붙여, 불 꺼진 성전을 찾아, 묵묵히 기도에 동참해 주신 월평본당 교우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군요. 우리 모두가 부활을 살아냄으로 천천히 조금씩 그러나 열심하고 꾸준하게 이웃을 감동시키는 참된 전교자로 거듭나게 해주시길, 삶의 구석구석을 살펴 축복하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청합니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