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17) 코로나 상황을 바라보는 ‘세상 속의 영성’

한준 (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
입력일 2020-04-21 수정일 2020-04-21 발행일 2020-04-26 제 3192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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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잡는 ‘은총의 시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의 기쁨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힘든 상황 속에 있지만 하느님께서 주시는 행복 또한 늘 함께한다는 것을 느끼게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두 달 가까이 집에만 있다 보니 아이들 인내심도 바닥난 듯하다. 평소 맘껏 누리지 못했던 인스턴트 음식이나 유료 영화 사이트도 이젠 지겹나 보다.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자기들끼리 챙겨 먹고 숙제하고 지내는 것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 별일 없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만으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그 여파가 얼마나 클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다. 감염되어 고통 받거나 죽어가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 어쩔 수 없이 위험에 노출된 채 생업을 이어가야 하는 이들, 일터를 잃은 이들, 집에 방치된 아이들 등 너무나 많은 이들이 힘든 시간을 겪고 있다. 뉴스에서 접하는 수많은 비극들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넘어 공포심까지 들게 한다.

이런 위협과 위기 앞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선택들을 해가기를 바라실까. CLC(Christian Life Community) 회원들은 이냐시오 영성을 살아가는 평신도들이다. 평신도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세상이라는 선물을 잘 돌보라는 사명을 받았으며 이냐시오 영성은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세상을 잘 돌보기 위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세상 속에서 식별하는 영성이다.

그런 관점에서 현재의 상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이 어떤지를 직면하게 한다. 국제공동체인 CLC는 코로나19 대유행 사태와 관련해 최근 상임위원회와 대륙 대표들이 참여한 긴급 화상회의를 진행하였다. 거기에서 각국 CLC들은 최근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와 CLC가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성찰한 것을 나누었다. 그렇게 다 같이 전 세계적인 위기에 대해 나누고 공감하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각자 안에 있는 사랑과 희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의 현실은 발전과 안정, 안락함 속에 가려진 세상의 이면을 바라보도록 한다. 사회적·경제적·생태적으로 지구 전체가 얼마나 큰 위기 앞에 놓여있는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깨닫고, 우리 공동의 집에 사는 모든 피조물들이 근본적으로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회심으로 초대하는 시간 같다. 비록 그 방식이 꽤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안에 담긴 초대의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인 것이다.

이 시련의 시간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슬픔과 고통에 귀 기울이시며 아파하시고, 우리를 돌보시고자 하신다. 세상을 바라보며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슬픔과 연민, 책임감, 나누려는 마음을 통해 하느님께서 일해가신다고 믿는다. 형제자매로서 서로를 돕고 위로하고 지지하면서 우리가 함께 이 시간을 극복해가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작지만 나눌 수 있는 뭔가를 찾고 행동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우리 안에 조금씩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아울러 이 시간은 근본적으로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우리 모두는 평신도로서 삶 속에서 여러모로 투쟁하고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나 행복, 사랑, 위로, 먹거리, 평화 등 단순하면서 기본적인 것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져다주는 행복과 기쁨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는 늘 힘든 상황 속에 있지만, 하느님께서 주시는 행복과 기쁨 또한 늘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변화될지 불확실하다. 아마도 세계 질서나 경제 상황, 일상 삶의 패턴 등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요청을 끊임없이 살피고 식별하는 것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하심에 깊이 감사하면서, 특히 세상의 변화와 위기를 감당하기 어려운 이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해 우선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하겠다.

한준 (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