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명예기자 단상] 내년엔 바쁜 부활절이었으면 좋겠어요!

이소연(체칠리아) 명예기자
입력일 2020-04-21 수정일 2020-04-21 발행일 2020-04-26 제 3192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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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닌 줄 알았던 것들이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늘 우리 곁에 있던 ‘바이러스’가 이렇게까지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이웃 나라에서 감염자가 폭증하고 도시 전체를 봉쇄해도, 연일 마스크를 구할 수 없다는 글들을 볼 때도 사실 실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실로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내가 속해 있는 군종 교구가 먼저 ‘영내 성당 출입 제한’을 시작했다. 영내 성당, 즉 부대 안 성당에 장병 가족들이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좀 더 무서운 일이 한 두 주 사이에 또 일어났다. 모든 미사와 모임, 레지오와 회의가 금지 된 것이다. 다른 교구들도 미사를 드리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정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다녔던 성당이었다. 기억이 떠오르는 오래전부터 성당은 늘 열려 있는 곳이었다. 한 번도 미사가 취소 된 것을 본 적도 없었고, 성당에 사람을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미사는 같은 시간에 봉헌됐고 성당 문은 늘 활짝 열려 있었다. 한밤중에 가도 성체등은 늘 밝혀져 있었고 홀로 계신 예수님은 늘 나를 반겨주었다. 그런데 그런 성당이 문을 닫았다.

여기저기서 가톨릭의 발빠른 대처에 칭찬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시대와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감사하고 기뻤다. 그렇지만 나 한 사람으로서는 진짜로 무서운 현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1~2주가 흘렀다. 재의 수요일은 성당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하고 지나갔고, 사순 기간이 다 가도록 성당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성주간이 시작됐다. 아이들 학교가 개학하지 않은 것보다 성당 문이 닫혀 있다는 사실이 더 갑갑하게 느껴졌다. 성당 마당에서 성 금요일 십자가의 길을 홀로 걸으면서 이 사순 시기를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고 있음에, 성삼일이 이렇게 ‘한가로움’에, 그리고 부활이 이토록 ‘허전함’에 속상해했다. 아이들도 한 마디씩 한다. “이렇게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이상해요.”

너희들 마음이 내 마음이구나 싶었다. 이 한가로움을 이상하게 느끼는 것은, 여전히 하느님은 내 곁에 계시다는 신호구나 하는 생각에 울컥 했다. 그래서였을까, 몸은 한가로웠지만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해 더 많이 분주했다. 성당이 굳게 닫혔다는 공포감과 함께, 한가롭게 다가오는 부활절을 생각하니 어디 하나 정해지지 않은 망망대해 표류하는 배와 같은 심정이었다. 성 금요일, 홀로 걸은 십자가의 길에서 주님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빌었다. 예수님의 부활처럼 기쁘고 밝은 소식이 이 세상에 전해지기를, 모두가 간절히 기다렸던 그 부활의 소식처럼 부활절이 평화로운 일상을 간절히 바라는 이 세상에도 빛의 소식을 전해주기를….

그렇게 부활절을 맞이했고 거짓말처럼 감염 확진자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이유들이야 많겠지만 부활절은 그렇게 희망의 소식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굳게 닫힌 성당 문이 열리고 미사 봉헌이 가능해지는 날도 멀지 않을 거라 기대한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몰랐던, 그 소중하고 귀한 것들에 새삼 감사하는 날들이 되어준 시간이었음은 분명한 것 같다. 다시 성당 문이 열리고 제대 앞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부활하신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평화를 주소서.’

기도하는 엄마 옆에서 아이들이 말해준다.

“이렇게 한가한 부활절 말고, 내년엔 작년처럼 바쁜 부활절이었으면 좋겠어요.”

■ 가톨릭신문 명예기자들이 삶과 신앙 속에서 얻은 묵상거리를 독자들과 나눕니다.

이소연(체칠리아)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