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마리아의 딸 수도회 (하)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0-04-21 수정일 2020-04-21 발행일 2020-04-26 제 3192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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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공동체 형성·신자 재교육에 헌신

2019년 마리아의 딸 수도회 한국진출 40주년을 맞아 회원들과 마리아니스트 남자수도회 가족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마리아의 딸 수도회 제공

마리아의 딸 수도회의 한국 진출은 1979년 이뤄졌다. 앞서 3년 전인 1976년, 마리아회 한국지부장 제임스 미수드(James Mifsud) 신부는 마리아의 딸 수도회 일본 관구에 초대장을 보냈고 이에 따라 일본 관구는 1978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답사했다. 이후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 승인을 얻어 2명의 수녀가 그 이듬해 한국에 파견된 것이다.

1980년 서울 양천구 목2동에 수도원을 마련한 수도회는 1981년 3명의 지원자를 받아들였다. 1984년에는 인천교구에 수련원을 설립했다.

사도직은 1985년 인천교구 남자 마리아회 샤미나드 피정의집에서 처음 시작했다. 이어서 1986년 인천 효성동본당 주말 봉사를 계기로 본당 사도직에도 발을 내디뎠다. 또 1988년 인천 마리아유치원 개원, 1997년 전주교구 순창본당 복흥공소 어린이집 개원으로 활동을 넓혔다.

이런 움직임 속에 일본 관구 소속이던 수도회는 1990년 12월 8일 로마 총본부 소속 한국 지구로 승격됐다. 이로써 일본 관구에 파견됐던 4명의 회원도 한국 상황을 고려해 귀국했다. 1998년부터 한국 회원들이 수도회의 모든 책임을 맡은 가운데 2012년에는 지구에서 관구로 승격되는 성장세를 보였다.

수도회는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는 말씀에 따라 교회의 보편적인 사명을 원칙적으로 따르면서 모든 형태의 사도직에 열린 입장을 지니고 있다. 이는 ‘본질적으로 선교사’라는 창립자 이념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창립자들 정신에 따라, 사도직은 신자들을 증가시키는 일과 믿음을 일깨워 신앙의 사도, 마리아의 사도로 양성시키는 일에 중점을 둔다. 젊은이와 가난한 이들은 사도직 활동의 우선적 대상이다. 사람들이 자유와 보다 나은 인격 성숙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는 교육 활동은 특별히 중요한 위치를 지닌다.

세계적으로는 학교(유치원, 초·중·고등학교), 기숙사(대학생, 근로자),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와 본당 사목 활동 및 마리아니스트 평신도 공동체 형성에 주력한다. 형제 수도회인 마리아회와의 협력, 빈민 지역 특수 사목, 요양원, 피정의 집, 교리 교수, 영성 지도 및 신앙 교육 등은 수도회가 주력하는 부분이다.

한국 관구는 서울대교구와 광주대교구, 수원, 인천, 전주교구에서 사도직을 펼치고 있으며 한국교회 신자들의 신앙과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몬테소리 유치원과 가난한 지역의 어린이집, 또 마리아니스트 영성센터(피정의 집), 다문화의 집, 청소년들을 위한 문화 공간 등을 운영하고 있다. 본당과 대학교 교목실 및 노인 전문 요양원에서도 활동 중이며 인도 선교에도 나서고 있다.

아울러 마리아니스트 평신도 공동체(MLC) 확장을 통한 믿음의 공동체 형성 및 신자 재교육을 수도회 본질적 사명으로 여기며 이들을 동반하는 데에 힘을 쏟고 있다.

현재 한국 회원 수는 종신서원자 41명, 유기서원자 1명 등 총 42명이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