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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비 주일 기획] 팬데믹의 고통 속, 여전히 하느님 자비를 고백한다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0-04-13 수정일 2020-04-14 발행일 2020-04-19 제 3191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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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짓눌린 인류에게 교회는 ‘자비의 자리’가 돼야 한다
생명 존엄성 위협하는 공포가 인간에 절망 가져다주는 시대
자비의 하느님 따르는 삶 필요
십자가는 하느님 자비의 절정
그리스도인은 공동체 연대로 세상에 시련 극복할 힘 전해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으로 가톨릭교회는 전대미문의 미사 중단 사태를 경험했고, 급기야 주님 부활 대축일에도 제주교구를 제외하고 공동체 미사는 거행되지 못했다.

교회는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낸다. 고통스러운 사순 시기를 지나 영광의 부활을 맞았음에도 그 기쁨을 충분히 만끽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하느님의 자비’를 되새기는 특별한 날을 맞아, 고통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자비의 손길을 성찰한다.

전 세계의 코로나19 환자는 4월 10일 기준 153만9288명을 기록했다. 사망자 수만도 10만 명에 가깝다. 게다가 지금도 빠른 속도로 환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행히 수 일째 확진자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다. 경제와 일상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세상과 미래는 암담해 보인다.

■ 짙은 어둠, “두려워 말라!”

지난 3월 27일 텅 빈 로마 성 베드로 광장, 무겁게 내리는 저녁 어스름에 더해 추적거리며 내리는 빗속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홀로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기도회와 축복식을 거행했다. 교황은 기도 중에 한탄하듯 말했다.

“짙은 어둠이 우리 광장과 길거리와 도시로 몰려들었고, 우리 삶은 벙어리가 돼 버린 침묵과 황폐한 허무에 사로잡혀 버렸다.”

무서운 기세로 세상을 뒤덮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짙은 어둠’은 인류에게 좌절과 절망을 가져다주는 듯하다. 세상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고, 빛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교황은 하느님께 간절하게,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인류를 돌아보시고 위로해 주시며 보호해 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교황은 확신에 가득 차 “두려워 말라”고 당부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풍랑의 회오리 속에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처럼 고통을 겪고 있는데, 주님께서는 대체 어디에 계십니까?”라는 물음에 교황은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라고 제자들을 꾸짖던 주님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이른다. 그리고 격리의 시간 속에서 좌절과 상심에 빠진 인류에게 공동체의 연대와 주님의 십자가에 대한 희망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 27일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기도회와 축복식 중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서 성광을 들고 ‘우르비 엣 오르비’ 특별 강복을 전하고 있다. 이날 교황은 현 상황에 대해 주님과 이웃들을 향한 삶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CNS 자료사진

■ 자비를 청하라!

며칠 뒤인 3월 30일, 교황은 교황청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재차 코로나19로 겁에 질린 인류를 도와 달라고 하느님께 청했다. 이날 미사 입당송은 하느님께 바치는 비탄의 기도였다. “하느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사람들이 저를 짓밟고 온종일 몰아치며 억누릅니다.”(시편 56,2) 교황은 자신을 성찰하고 잘못을 뉘우치며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느님은 자비이시기 때문이다.

교회는 2001년부터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도록 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0년 4월 30일, 부활 제2주일에 폴란드의 마리아 파우스티나(Maria Faustina Kowalska, 1905~1938) 수녀를 시성하면서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도록 했다. 이에 따라 그 이듬해부터 교회는 매년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고 청하는 날로 지내기 시작했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거룩한 환시를 자주 보았고 많은 예언을 했으며 그리스도의 성흔(聖痕)을 간직했다. 그녀를 통해 전해진 메시지는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세상에 일깨우고,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신심을 실천하라는 것이었다.

■ 자비가 필요한 시대

사실, 하느님의 자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낯선 가르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와서 그 의미가 유독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시대가 요청하기 때문이다. 인류와 세계가 하느님의 자비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비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가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파우스티나 수녀 시성식에서, 두 차례 세계대전의 비극적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비의 메시지가 우리 시대에 얼마나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류의 야만적 행태는 비단 전쟁의 시대였던 20세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삼천년기에 들어선 인류는 여전히 살인, 집단 학살, 낙태, 안락사, 자살 등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범죄들과 이웃에 대한 착취, 낯선 이들에 대한 배제와 박해, 그리고 ‘공동의 집’인 생태 환경의 파괴 등에 주저하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 27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코로나19가 주는 의미를 묵상할 것을 요청하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주님의 심판 시간이 아니라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지나가는 것인지를 선택하고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을 가려내는 판단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을 향한, 그리고 이웃들을 향한 삶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주님과 이웃을 향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식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하느님 자비’ 상본으로 널리 알려진 이 성화는 예수님 성심에서 흰색과 붉은색 두 빛줄기를 뿜어내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 식별하는 삶

인도 예수회 미론 페레이라 신부는 지난 4월 5일자 가톨릭신문에 실린 칼럼에서 코로나19가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도록 경고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전염병은 인류가 자연과 본래 맺은 계약을 깨뜨렸으며, 그래서 자연이 응징을 요구한다고 은유적으로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며 “우리 세계는 얼마나 더 오래 탐욕과 야심과 폭력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을 것인가?”라고 물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8일 영국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것들이 자연의 보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연의 대처인 것은 분명하다”며 “코로나19 확산이 생산과 소비의 속도를 늦추고, 자연 세계를 이해하고 심사숙고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에 앞서 더욱 종합적으로, “이런 새로운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이 새로운 길, 새로운 사랑의 표현을 찾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빈다”고 말했다.

■ 여전히 자비를 희망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 27일 기도에서, 고통의 시기에 “주님께로 가서 의지할 것”을 요청하며 “주님께서는 유혹의 시기에 연대와 희망을 다시금 일깨우도록 초대하신다”고 권고했다. 교황은 우리가 “두려움에서 벗어나 희망을 주는 믿음의 힘, 주님을 껴안자”고 당부했다.

자비를 베푸는 것은 하느님의 고유한 속성(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37항)이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당신 자비의 활동(112항)이며,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와 그 무한한 힘을 경험(24항)한 교회는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자비의 자리가 돼야(114항) 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팬데믹의 고통 속에서, 하느님 자비의 절정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지함으로써 우리는 구원과 생명의 희망을 여전히 간직한다. 그렇게 간직하는 자비의 희망은 공동체 연대의 실천으로 이어짐으로써, 인류는 고통과 시련을 극복할 힘을 얻는다.

시련은 깊지만 여전히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희망하고, 그 자비를 닮아가도록 노력한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