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자들 없는 주님 부활 대축일 풍경

입력일 2020-04-13 수정일 2020-04-14 발행일 2020-04-19 제 3191호 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주님 부활 대축일! 가톨릭교회에서 1년 중 가장 기쁘고 감격스럽게 성대한 전례를 거행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에 감사하는 날이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제주교구를 제외하고 전국 모든 교구가 미사 없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보내게 됐다. 일찍이 없었던 풍경이다. 신자들은 성당에 모여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지 못하는 만큼 더욱 간절히 미사 재개를 염원했다.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없는 주님 부활 대축일 풍경을 모았다.

# 서울대교구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 생중계 현장

4월 12일 주님 부활 대축일 낮 12시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고요함으로 가득 찬 빈 성당에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드문드문 자리에 앉아 있던 교구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이윽고 웅장한 오르간 반주와 함께 미사를 주례하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교구 주교단이 입당 행렬을 시작한다.

서울대교구는 코로나19로 미사 중단을 무기한 연장하면서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가톨릭평화방송 TV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했다. 염 추기경은 강론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나약한 우리에게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선사해 주신다”며 “그분께 우리를 맡기면 두려움을 이기고 희망을 간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

# ‘가족과 함께 방송 미사’ 남양주 별내본당 박정근씨 가정

코로나19로 인해 의정부교구가 파스카 성삼일과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방송으로 대체한 가운데 박정근(요한·44·의정부교구 남양주 별내본당)씨 가정도 4월 11일 파스카 성야 미사를 방송으로 참례했다.

박씨와 어머니, 아내, 두 딸은 TV 앞에 촛불을 켜고 경견한 마음으로 파스카 성야 미사에 임했다. 박씨는 “성당에서 교우들과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슴으로 와 닿는 면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며 “하지만 매주 가족과 함께 방송 미사를 시청하면서 신앙심이 더 두터워지는 긍정적인 모습도 발견했고, 방송으로나마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고 밝혔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

# 서울 여의도동본당 주님 부활 대축일

여의도 한강공원 인근에 위치한 여의도동본당(주임 홍성학 신부). 주님 부활 대축일인 4월 12일 오전, 성당 앞마당 성모상 앞에 드문드문 놓인 의자에 한 신자가 홀로 앉아 있었다. 불 꺼진 성전에는 입장 전 체온을 재고 인적사항을 적고 들어온 몇몇 신자들이 마스크를 낀 채 침묵과 어둠 속에서 기도 중이었다.

평일보다도 더 한적한 주님 부활 대축일의 풍경이 처연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가운데 오전 11시에는 본당 주임 홍성학 신부와 보좌 최성한 신부 등이 몇몇 수도자들과 함께 신자 없는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

힘차게 울려 퍼지는 기쁜 부활 노래도 들리지 않고 부활 달걀도, 부활 축하 인사도 나눌 수 없는 주님 부활 대축일이지만 환하게 켜진 부활초를 바라보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되새기고 언젠가 우리에게도 찾아올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가져 본다.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

# ‘스마트폰 미사 참례’ 서울 신도림동본당 청년 안윤기씨

서울 신도림동본당(주임 양장욱 신부) ‘포센티’ 청년 전례단원 안윤기(가브리엘)씨는 이번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중계를 보며 참례했다. 그는 성전에서 부활의 기쁨을 맞는 일상이 사라진 것에 아쉬워하면서도 “평소 신앙 관련 콘텐츠를 활용한 기도 봉헌과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선행을 통해 신앙을 실천했기에 기쁘게 주님 부활을 맞았다”고 말했다.

<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

# 바티칸의 주님 부활 대축일

코로나19 대유행은 바티칸의 부활절 분위기도 바꾸었다. 그간 바티칸의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는 네덜란드에서 공수된 튤립 등 화려하게 장식된 성 베드로 광장 야외 제대에서 수십 명의 추기경과 주교단이 수만 군중과 함께하며 교황의 주례로 성대하게 봉헌됐다. 하지만 올해 대축일 미사는 텅 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소수의 회중과 성가대만이 참가한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했다. 미사 뒤 이뤄진 부활 강복 ‘우르비 엣 오르비’도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가 아닌 성 베드로 대성당의 베드로 성인 묘지 위에서 발표됐다. 이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자가격리와 봉쇄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류에 대한 연대의 표시였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 서울 수궁동본당 파스카 성야

서울 수궁동본당(주임 김동원 신부)은 여느 때 같으면 축제 분위기 속에 신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4월 11일 오후 파스카 성야에도 적막감 속에 잠겨 있었다. 널따란 성당 마당은 휑하니 비어 있었고 성당으로 들어가는 유리문에는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는 별도 지침이 있을 때까지 중단합니다’, ‘교리실에서의 모든 회합은 중지합니다’ 등의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성전에도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그러나 텅 비어 있어서 더욱 커 보이는 성전 한 자리에 여성 신자 한 명이 침묵 속에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보였다. 비록 성전에 오지는 못한 수궁동본당 신자들도 마음으로는 같은 자리에서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고 있을 듯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