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죽음에서 생명으로] 낙태 상처 신앙으로 극복한 박명우씨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20-04-13 수정일 2020-04-14 발행일 2020-04-19 제 3191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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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이 가슴 조여왔지만… 하느님 자비로 행복에 이르러
 신체적 고통으로 낙태 선택  정신적 고통이 평생 뒤따라
 신앙인으로 봉사 활동 시작
 새 생명 살리는 데에도 일조
“낙태 경험자에 질책보다는  공감해줘야 살릴 수 있어”

박명우(아셀라·69·서울 갈현동본당)씨는 한때 낙태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랬던 박씨는 피정,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교육 참여 등으로 죄책감을 극복했다. 현재는 본당 선교분과장 등으로 활동하며 생명을 살리는 데에도 일부 동참하고 있다. 아이의 ‘죽음’에 대한 상처를 신앙으로 극복해 지금은 자신도 새 삶을 얻고, 또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죽음으로써 다시 태어난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3월 29일 서울 갈현동성당에서 박씨를 만났다.

“이제 저는 어떤 고통도, 상처도 두렵지 않아요. 제 삶을 주님께 의탁하면 모든 순간이 행복으로 두 배, 세 배 커진다는 걸 경험했으니까요. 제게 이런 삶을 주신 주님께 감사해요.”

1977년 첫아이를 지운 박명우씨는 이렇게 밝혔다. 자신의 낙태 경험을 털어놓으며 한 말이다. 당시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던 박씨는 현모양처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아이를 가졌다. 그러나 아이를 갖자마자 입덧이 시작됐다. 매일 아무것도 못 먹는 건 당연하고 위액을 토해내기도 다반사였다. 처음 겪는 일에 박씨는 도저히 참고 견딜 수 없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적게 낳아 잘 키우자’가 당연시되던 시대였다. 결국 박씨는 아이를 지우기로 했다.

아이를 지운 직후에는 죄책감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두 아이를 가지면서 박씨의 고통은 시작됐다. 육체적인 고통은 크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아이들이 아플 때면 ‘내가 죄를 지어서 그렇구나’하는 자책감이 들었고,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가세가 기울면 ‘또 내 탓이구나’하며 후회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에도 ‘첫아이가 태어났으면 지금 얘들과 행복하게 지냈겠지’하며 첫아이에 대한 생각은 계속 박씨를 따라다녔다.

신앙으로 낙태 상처를 치유한 박명우씨는 “하느님은 우리를 한없이 용서해 주시는 무한한 분”이라면서 “하느님 안에서 믿고 의탁하고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다 1980년대 말, 박씨는 한 영상을 보고 가슴을 턱턱 쳤다. 한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 배 속에서 죽는 장면을 본 터였다. 박씨는 “생명을 해치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영상으로 보면서 죄책감을 정말 많이 느꼈다”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밝혔다.

박씨는 그 후 한 수도원을 찾아 죽은 아이를 위한 ‘평생 미사’ 봉헌을 신청했다. 냉담을 풀고 성당을 다니며 아이를 위한 기도도 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죄가 쉽게 잊히진 않았다. 힘들 때마다 주님께 기도만 할 뿐이었다. “주님, 제가 너무 잘못했어요. 평생 주님을 위해 살 테니 제 죄를 용서해 주세요.”

그러다 신앙인으로서 시작한 봉사 활동들은 박씨에게 큰 도움이 됐다. ‘함께하는 여정’ 봉사, 본당 레지오마리애·선교분과 활동,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교육 수강과 관련 봉사활동 등은 뿌리 깊던 박씨의 상처를 차츰 아물게 했다. 2003년부터 매주 화요일 유치장에서 진행한 말벗 봉사는 특히 박씨에게 큰 위로가 됐다. 유치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려고 여러 말씀을 읽다 보니 박씨도 덩달아 말씀으로 위로받게 됐고, 유치장에서 만난 사람에게 “덕분에 새 삶을 살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적힌 편지를 받을 때면 간접적으로나마 누군가의 삶에 새 생명을 심어준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실제 박씨는 새 생명을 살리는 데에도 일조했다. 자신의 아들이 대학시절 ‘사고’를 치고 왔을 때 “꼭 낳아서 키우라”고 한 것이다. 박씨는 “졸업도 안 했고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였지만, 낙태가 얼마나 나쁜 줄 아니까 낳아서 키우라 했다”며 “지금도 너무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씨는 “이제 나에겐 행복한 일밖에 없다”고 말한다. 고통 이면에는 행복, 행복 이면에는 고통이 있고, 인생에는 기쁨과 슬픔 모두 있지만, 하느님 뜻을 따르는 한 결국 행복에 이른다는 점을 깨달았다면서 말이다.

특히 박씨는 “낙태가 결코 잘한 일은 아니지만, 하느님은 우리를 한없이 용서해 주시는 무한한 분”이라면서 “하느님 안에서 믿고 의탁하고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낙태 유경험자들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아픈 마음을 보듬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그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면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질책하기보다는 상대의 아픔에 공감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박씨는 자신도 또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새 생명을 살리는 데에 힘쓸 수 있도록 영성 교육 등을 수강할 계획이라고도 말했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