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55) 그리스도인과 교회 / 윌리엄 그림 신부

윌리엄 그림 신부(메리놀 외방전교회),※윌리엄 그림 신부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
입력일 2020-04-13 수정일 2020-04-14 발행일 2020-04-19 제 3191호 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그리스도인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말하는가? 그렇다. 그러나 교회에 간다는 사실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교회에 가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교회에 간다. 차고 안에 있다고 내가 자동차가 아니듯이, 교회 건물 안에 있다고 다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로 많은 가톨릭 신자들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가지 못하는 지금, 우리는 우리 삶에서 교회에 다닌다는 것의 의미와 교회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얻게 된다.

어떤 이들은 주일 아침 늦잠을 자도 된다는 것에 느긋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교회에 갈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다른 이들을 위해 불가피한 희생이라고 여긴다. 또 어떤 이들은 교회에 갈 수 없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하며 어떻게든 공공 종교 행사 금지의 벽을 뚫어 보려고 시도한다. 심지어 그러한 시도를 자신의 권리로 여기며 정부나 종교 당국의 권고를 따르지 않는 이들도 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교회에 가는 이유도 다양할 것이다.

우리 대부분에게 교회에 가는 것은 그저 주일마다 반복되는 일상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늘 갔기 때문에 교회에 간다. 교회에 가지 않으면 대신 지옥에 갈까 두려워서 교회에 가고, 아이들 때문에 교회에 가고, 강론을 들으러 교회에 간다. 크게 시선 끌지 않으면서 성가를 부를 수 있어서 교회에 가고, 성체를 받아 모시러 교회에 가고, 친구들을 만나러 교회에 가고, 연인이나 배우자가 함께 가자고 해서 교회에 간다. 우리 신앙을 이웃에게 선포하거나 다른 신자들에게 으스대러 교회에 가고,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러 교회에 가고, 서로를 응원하러 교회에 가고, 우리 신앙을 굳건히 하러 교회에 가고, 우리 신앙을 기념하러 교회에 가고, 우리 신앙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러 교회에 가고, 기도하러 교회에 간다.

문법적으로 볼 때, ‘나는 교회에 간다’는 문장은 대명사 주어(‘나는’)와 동사(‘간다’)와 전치사구(‘교회에’)로 구성된 직설적 선언이다. 그러나 문법으로 조금 장난을 쳐 보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교회에’(to church)를 동사 원형 ‘교회하다’(to church)로 바꾸고, 이를 ‘나는 교회한다’(I church) ‘너는 교회한다’(You church) ‘우리는 교회한다’(We church) 식으로 활용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특정한 건물에 가는가 그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주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곳이면 어디든, 교회하기 위해서 간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교회한다.

거짓 세상 앞에서 진리를 말할 때,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건설에 참여할 때, 이웃에게 봉사할 때, 우리는 교회하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격리의 시대에 우리가 이웃에게 봉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과 멀찍이 거리를 두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교회하는 최선의 길은 모이지 않고 다른 이들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 ‘교회’의 궁극적 어원은 ‘모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하기 위해 꼭 미사를 드리러 모일 필요는 없다. 그리스도교가 박해받던 17~19세기에 일본에는 사제도 성당도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모였고, 그 상황에서 기도하고 서로 봉사하며 후손에게 신앙을 전할 수 있었다. 그들은 교회했다. 어떤 이들은 성당도, 사제도, 미사도 없던 그 삼백 년을 일본 그리스도교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일본에 있는 우리 성직자들이 묵상해야 할 부분이다.

신자들이 모일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로마교구를 포함한 여러 교구와 본당에서는 회중 없이 드리는 미사를 실시간 중계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는 백성의 활동인 전례를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스포츠 경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비참여 관람 행사로 바꾼다.

‘대화 미사’가 도입된 1922년 이후 계속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의 오랜 전통에 근거했다고 보았던 ‘공동 활동’으로서의 전례 개혁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되어 버렸다.

미사를 위해 십자가 지붕 아래 안에 모이는 것이 교회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우리의 편견을 깨뜨릴 때다. 이 21세기에, 우리에게는 모일 수 있는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 단지 창의력이 부족할 뿐이다.

전 세계 기업들은 인터넷 기반 도구들을 활용하여 회의를 진행한다. 본당과 교구들도 그런 기술을 활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고 묵상을 나눌 수 있게 ‘함께 모이도록’ 할 수는 없을까? 우리는 함께 성가도 부를 수 있을 것이고, 구경꾼처럼 앉아 있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교회에 갈 수 있다.

윌리엄 그림 신부(메리놀 외방전교회),※윌리엄 그림 신부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