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중독과의 만남 1 / 이중교 신부

이중교 신부 (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입력일 2020-04-13 수정일 2020-04-14 발행일 2020-04-19 제 319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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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AA 맞나요?”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Alcoholics Anonymous) 모임을 줄여 AA라고 부른다. 이 모임은 단순하게 설명하면,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을 단주하기 위한 자조 집단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모임의 장소이다. 당연히 알코올중독병원에 있어야 할 모임이 지역사회 내 복지관, 주민센터 그리고 성당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필요로 하는 모임이 성당에서 하고 있다니. 그것도 내가 사목하고 있는 이주사목회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성당의 회합실이라니.

현재 서강대학교 사회복지학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학생으로서 중독을 연구하려고 한다. 그리고 사회복지에서 질적 방법으로 논문을 쓰는 방법은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그 안에 담긴 함의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로써 벌써 두 가지나 중독으로 논문을 쓰는 데에 충분조건을 채웠다. 하나는, 신부가 성당 회합실에서 하는 모임에 참석하는 일이 뭐 어려울까. 또 하나는, 신부만큼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는 것이 뭐 어려울까.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어렵다는 사실을 이 모임을 통해 깨달았다.

알코올 중독자들의 모임이라는 선입견이 추운 겨울날 땀으로 긴장하게 했다. ‘괜히 술에 취한 아저씨에게 창피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설마. 그래도 성당 회합실인데 신부에게 그렇게까지 하실 분은 없을 거야’ 등 이런저런 걱정을 안고 조심스레 문을 열어본다. 그 순간 처음으로 마주친 분이 문 선생님이었다. 문 선생님의 첫인상은 말 그대로 상상 속에 그리던 전형적인 알코올중독환자이다. 짧은 머리에 산전수전 다 겪으신 두툼한 얼굴. 잠바를 벗으면 문신은 몇 개 그려져 있을 것 같은 단단한 체격. 밖으로 나오시던 도중 잠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시며 마주친 나의 질문에 첫인상은 더욱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맞는데요. 혹시 신부님이세요? 그런데 신부님께서 무슨 일로 이곳에.’

순수한 어린 양의 표정과 해맑은 어린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애쓰고 또 애썼다. ‘무엇 때문에 이 모임에 참석했으며, 여기 계신 분 중에서 단 한 분도 원치 않으시면 바로 나가겠습니다’ 등등 생각보다 길었던 설명 뒤에 돌아온 짧은 한마디가 이 모임의 합격점을 받았음을 확신했다.

‘저기에 앉으세요.’

모임 15분 전. 미리 와 계셨던 다른 두 선생님은 문 선생님의 합격점을 번복할 마음보다 오히려 신부에 대해 궁금했던 그동안의 질문들을 털어놓으면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주셨다. 그 순간, ‘이 두 분은 가톨릭 신자분이시고 문 선생님은 부처님과 닮으셨으니 불교를 믿겠구나’ 확신하였지만 왜 이리 자꾸만 빗나가는지. 알고 보니 문 선생님은 열심한 천주교 집안이었고, 다른 두 분은 무신론자였다.

이중교 신부 (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