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주님 부활 대축일에 만난 사람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이재훈
입력일 2020-04-07 수정일 2020-04-07 발행일 2020-04-12 제 3190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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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우리 교회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신자들은 TV나 스마트폰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무료급식소와 진료소 등 사회복지시설이 잇따라 휴업에 들어가며 가난한 이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상황 속에서도 각자 삶의 자리에서 신앙을 이어가며 더욱 밝게 빛나고 있다. 대부분의 교구에서 미사와 종교 활동은 중단됐지만 하느님의 뜻을 찾아 사순 시기를 보낸 이들의 삶의 현장을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소개한다.

■ ‘쪽방촌 이웃과 함께’ 서울 단중독사목위 허근 신부

“봄이 되면 돋는 새순처럼 ‘나눔의 삶’으로 새로 나길”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움츠러들고 있지만, 다닥다닥 붙어 있는 1평 남짓한 집에서 생활하는 서울 후암동 쪽방촌 주민들의 문을 두드리는 사제가 있다. 서울대교구 단중독사목위원회 위원장 허근 신부다. 그는 불빛 없이 어둡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 구석구석을 마치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드나든다. 해맑게 인사를 건네며 쪽방촌을 누비는 그의 뒷모습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

허 신부는 단중독사목위원회가 운영하는 가톨릭사랑평화의집에서 6년째 쪽방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종교 활동이 제한되면서 쪽방 주민들을 위한 도시락 배달에도 큰 어려움을 겪자, 우리 사회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함을 호소했다.

“이럴 때일수록 감염에 취약한 환경에 놓인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그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쉬워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필요하죠. 우리가 물질적 나눔은 못하더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로써 힘을 모아야 합니다.”

오랜 시간 쪽방 주민들 곁을 지켜오며 그 안에서 하느님을 느낀다고 고백하는 허 신부. 처음에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하느님 안에서 같은 형제임을 느끼고 그들 안에도 하느님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한다.

허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대로 가난한 사람들은 바로 우리 형제들이고 그들이야말로 ‘낙원으로 가는 여권’”이라며 “하느님을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들과 함께하며 그 안에서 생명의 신비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저의 일은 제가 믿는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라며 “하느님께서는 제가 그들 안에서 제 모습을 돌아보길 바라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개인주의와 이기심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더불어 사는 삶’과 ‘나눔’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대인들이 욕심에 눈이 멀어, 배가 부른데도 나눌 줄 모르고 계속 열매를 따 먹는 어리석음을 꼬집었다. 그는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셨다”며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은 하느님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라고 주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미사가 중단된 이번 사순 시기는 그에게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시기였다. 그는 “한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 새순이 돋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코로나19를 통해 속죄와 나눔의 중요성을 알려 주시려는 것 같다”면서 “우리 죄를 대신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하느님을 기억하며, 우리 주변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부활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가 됐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신자들과 함께 봉헌하는 미사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큰 은총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기도하겠습니다.”

<성슬기 기자>

■ SNS로 신앙 이어가는 서울 연희동본당 청년 김주희씨

“일상의 소중함 깨달으며 더 깊은 신앙 뿌리내렸죠”

“당연했던 일상이 당연하지 않은 요즘 부활을 더욱 기다립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주일마다 누리던 평범한 신앙생활이 사라진 가운데 서울 연희동본당(주임 김찬회 신부) 장애학우 주일학교 ‘반디’ 교사 김주희(루치아)씨는 하루빨리 학생들과 미사에 참례하는 날을 기다린다.

김 교사는 미사가 중단된 와중에 서울 연희동본당 부주임 박민재 신부가 지난 3월 15일부터 봉헌하기 시작한 인스타그램을 통한 라이브미사(이하 라이브미사)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김 교사는 “지난달 15일부터 주일마다 참여한 라이브미사는 사순 시기 속 기다림 끝에 맞이한 부활과 같았다”며 “덕분에 기도 안에서 신앙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박민재 신부는 2월 25일 미사가 중단되자 SNS를 통해 “여러분 삶의 자리 중 하나였던 성당이 잠시 문을 닫지만, 신앙은 문을 닫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카드뉴스를 제작해 본당 청년들의 신앙생활을 이끌었다. 또한 3월 15일 오전 11시와 오후 8시에는 SNS를 통해 첫 미사 생중계를 했다. 아울러 청년들의 참여를 도모하기 위해 미사 인증샷 이벤트도 진행했다. 박 신부의 라이브미사는 서울대교구에서 미사 재개 통보가 있을 때까지 매주 주일 오전 11시, 오후 8시에 진행된다.

반응은 뜨거웠다. 해당 게시물이 청년들의 SNS에 퍼지며 ‘지금 시대에는 이런 사목이 필요하다’, ‘다시 성당에 가고 싶어진다’와 같은 평이 쏟아졌다. 김 교사 또한 오전 11시, 오후 8시 라이브미사에 모두 참여할 정도로 ‘팬’이 됐다. 그는 “주변에서 부러워함과 동시에 어떻게 하면 같이 미사를 볼 수 있는지 물어 보더라”며 코로나19로 중단된 미사에 대한 청년들의 갈망을 전했다.

그에게 SNS 라이브미사는 절망 속에서 신앙과 희망이라는 뿌리를 더욱 단단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김 교사에게 이번 사순 시기는 ‘주일’이라는 일상이 사라져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SNS로 신앙을 이어가며 어느 때보다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했다. 당연했던 일상에 감사하게 됐으며 평소 소홀했던 기도들도 틈날 때마다 열심히 바치고 있다.

김 교사는 라이브미사를 봉헌하며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신부님의 따뜻한 배려를 느낀다고 했다. 그는 특히 박 신부가 3월 15일 미사 강론에서 “청년들과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고 한 말이 저희 청년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됐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 교사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졌던 반디 주일학교 학생들이 더욱 그립다”면서 “주일학교 학생들과 청년 모두가 다시 미사를 볼 수 있는 희망찬 순간을 생각하며 신앙을 잘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재훈 수습기자>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이재훈 수습기자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