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선물 / 김우정 신부

김우정 신부 (제1대리구 병점본당 주임)
입력일 2020-04-07 수정일 2020-04-07 발행일 2020-04-12 제 319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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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글을 시작할 때 기쁘게 사는 것을 언급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기쁘게 살아가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여러 답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요약한다면 그것은 상황과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어려우니 요약하자면 우리는 ‘어디서나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따금 인사이동이 있을 때면 ‘어디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곤 한다. 그런데 그곳이 좋은 곳이 될지 아닐지는 그곳이 좋은 곳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내가 거기서 행복한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 채소 좋아하는 사람이 고기만 가득한 곳에 간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무엇이든 감사하며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상황과 조건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

그런데 그 감사가 참 어렵다. 받을 것 생각나고, 본전 생각하다 보니 자기를 아끼다 사람을 잃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사람은 소중히 대해져야 할 이들이 아니라 자꾸 하나의 조건이자 부품으로 도태되어 버린다. 그러니 고마워할 일은 없어지고, 모든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만들어낸 고통이 되며,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벗어나지 못하고 그나마 지금 가진 것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서 사람과 상황을 가려가며 선택적인 모습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삶에 과연 기쁨이 있겠는가. 감사할 것이 없으면 기쁜 것도 없고, 기쁜 것이 없으면 거룩함으로 나아가기는 요원해지고 우리가 만나고 전하는 것은 하느님도 기쁜 소식도 아닌 음울하고 어두운 소식, 죄책감을 일으키고 단죄만 하다 끝나며 누구 하나 설득하지 못하는 모습이 된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기쁠 수가 없다. 소화불량에나 안 걸리면 다행이다.

우리가 찾는 기쁨은 밖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주님께서는 기쁜 소식을 어디서 찾아내서 오시지 않았다. 당신 자신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셨다. 그분은 어디서나 행복한 분이셨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도 자신의 신세를 탓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하나가 되셨다. 그분이 계시는 모든 곳이 바로 교회였고, 그분과 함께한 모든 시절이 전성기였으며, 그분에게는 무엇보다 아버지께서 맡기신 백성이 먼저였기에 그분은 우리를 종이라 부르지 않으시고 친구라 부르셨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바로 ‘기쁜 소식’이 되라고.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머물러 계실 때, 그 사랑에 자신을 맡겨 본래의 모습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서나 그분을 만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며 행복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믿음을 가진 모든 이는 기쁨 가운데 거룩함으로 나아갈 것이다.

김우정 신부 (제1대리구 병점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