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29)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경찰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0-03-31 수정일 2020-03-31 발행일 2020-04-05 제 3189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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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어느 경찰서의 서장님과 수사계장님을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평소 바쁜 경찰 업무 중에도 천주교 신자로서 충실한 신앙생활을 영위하시는 두 분의 모습에서 좋은 감동을 받았던 나는 공적인 근무가 끝난 시간에 사제관 집무실에서 만나자는 제의를 했었습니다. 두 분은 기꺼이 시간을 내 주셔서 우린 함께 만날 수 있었습니다.

두 분에게 공통으로 느껴지는 모습은 수더분한 인상과 편안한 미소였습니다. 그 날 사복을 입어서 그랬는지, 위험한 범죄 현장을 누비며 울그락불그락하는 형사의 모습이나 경찰에게서 보일 수 있는 위압감 등은 전혀 풍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 분의 외모는 과연 이 분들이 험악한 범죄인들을 제압하거나, 체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저 선하고 착한 이웃 집 아저씨처럼 보였습니다. ‘아마도…, 제가 범죄 영화를 많이 봐서 그랬나 봅니다.’

차를 마시면서 이어진 대화는 경찰이 된 배경에서부터 서로 각자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천주교 신앙을 가지게 된 배경, 가족이 함께 신앙을 가지고 있기에 느끼는 기쁨, 경찰관으로서 배우자와 가족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 특히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명의식과 업무에 대해서도 뿌듯함 등을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최근에 있었던 일을 물었습니다.

“지난해 4월에 귀한 분의 후원을 받아서 성지 마당 주변으로 넝쿨 장미 30그루를 심었어요. 그래서 5월 달부터 8월, 계속해서 9월 달에도 장미 송이들이 아름답게 피어서 성지 주변이 얼마나 아담하고 예뻤던지. 그런데 누군가가 새벽 시간에 성지의 모든 장미 가지를 다 잘라 버린 거예요. 사실, 이 장미는 12월 초까지 꽃을 피우는 특징을 갖고 있거든요. 이 행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경찰에 신고를 해서 범인을 잡아야 할지….”

그러자 두 분 다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말했습니다.

“아이쿠, 그런 황당한 일이 있었군요. 인적이 없는 새벽. 성당 소유의 장미 가지 전부를 누군가가 다 잘라 버렸다니. 그건 다분히 의도성과 고의성이 있는 행위이고, 분명히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경찰관이 나의 마음을 알아주니 기쁜 마음에 나는 말했습니다.

“성당에서 일어나 일이라지만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 없어서, 저도 강력하게 이 문제를 처리해 볼 생각을 했거든요. 근처에 있는 CCTV 파일을 확보하고, 목격자를 통해서 장미 가지를 거의 밑 둥까지 모조리 잘라버린 그 범죄자를 잡아서, 손해 배상 뿐 아니라 정신적인 피해 보상까지 요청할까…. 정말이지, 성당 소유라 하지만, 여기에도 엄연히 책임자가 있는데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성당의 재화에 피해를 끼친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하잖아요.”

그러자 두 분의 경찰은 나에게 다음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신부님께서 그 문제로 경찰에 신고하시면 저희들도 도움을 드릴 수 있어요. 맞습니다, 성당 소유의 장미이지만, 엄연히 소유권자가 있기에, 분명 범죄 행위로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신부님, 장미를 자른 사람은 과연 어떤 의도로 그러한 행위를 했는지를 이해하면 어떨까 합니다. 혹시 그 사람이 장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데, 올 해 장미를 새로운 땅에 심었기에, 가지 정리를 잘만 해 준다면, 내년에 더 잘 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왼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했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전혀 모르는 주임 신부님을 찾아가서 무슨 말을 하기도 어렵고. 아무튼 저희는 그런 생각이니, 신부님이 결정하시면 함께 할게요.”

그날, 사제는 경찰처럼 생각하고, 경찰은 사제처럼 말하고! 서로의 입장이 뒤바뀐 대화였습니다. 그리고 두 분들 말이 더 복음적이라…. 올해, 장미꽃이 더 활짝 피기를 바랄 뿐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