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13)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산다는 것

한준 (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
입력일 2020-03-24 수정일 2020-03-24 발행일 2020-03-29 제 3188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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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지만 ‘가난하지 않은 교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한 것은
스스로 가난한 이들과 어울리고 같이 먹고 마시며 
즐겁게 나눴다

자미.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13년 전 경기 화성에 있는 법무부 출입국보호소 면회실에서였다. 두꺼운 유리문과 철창 너머로 짧게 안부를 확인하고 미처 챙기지 못한 자기 짐을 챙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15분 정도 짧은 면회를 끝으로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한국에서 십여 년을 미등록(일명 불법) 노동자로 살았던 그는 출입국보호소 시설에서 한 달간 구금되었고 이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바로 추방되었다. 내가 이주노동자 상담소에서 잠시 일하던 때의 일이다.

자미는 한국에 10대 후반에 와서 30대 초반까지 10여 년을 지냈다. 한국말도 잘하고 지역 상황도 잘 알았기 때문에 이주민을 위한 통역을 해주러 종종 상담소에 왔다. 아니면 별일 없어도 풀빵 한 봉지를 사들고 잠시 들러서 자기 사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라면도 엄청 좋아해서 비 오는 날이면 항상 라면을 끓여먹는다고 했다. 그렇게 한국을 좋아하고 착한 친구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죄인처럼 체포되고 한국에서 쫓겨나니 한동안 마음이 슬프고 상실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떠난 이후 그는 국제전화로 내게 종종 안부를 물어오고 있다. 13년 동안 끊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뭔가 내 도움이 필요해서 그러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냥 전화해서 한국이 너무 그립고, 라면도 먹고 싶고, 한국 정부에서 자기한테 비자를 주면 안 되냐며 넋두리를 하곤 했다. 그에게는 한국에 온다는 것이 단순한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우리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문제 같았다. 정말 같이 살고 싶은데, 성실하게 열심히 일할 수 있는데, 그는 우리 사회에서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규정을 지키지 않았으니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은 분명 맞는 법 논리다. 그러나 규정 준수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 이주민같이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이 함께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발전과 세련됨, 안정과 안전, 또는 더 우선적인 것들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설 수 있는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들과 함께하려는 흐름도 약화되고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처럼 계층 간 구분이 더 명확하고 강해지고,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저 깊은 반지하 방으로 숨겨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을 뿐 소외가 더 심해진다.

더 안타까운 건 그런 세상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우리 교회 분위기에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점점 대형화되고 중산층화 되면서 가난한 이들이 점점 찾아오기 힘든 곳이 되어가고 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이지만 가난하지 않은 교회, 가난한 이들이 찾아오기 힘든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 스스로 가난하지 않으면서 가난한 이들이 맘 편히 찾아오는 곳이 되긴 어렵다. 가난한 이들을 중심에 두지 않고 단지 돕는 선으로만 역할을 규정짓는 것도 한계가 크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신 것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호단체를 만들거나 구호활동이 아니었다. 스스로 가난한 이들과 어울리시고 같이 먹고 마시며 즐겁게 나누셨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친교를 보여주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가난한 이들을 항상 중심에 두고 그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에 온전히 통합되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며(복음의 기쁨 187장), 그들이 우리를 은총의 길로 이끈다고 하셨다.

예전에 한국CLC에서 이주노동자 상담소를 운영할 때에도 문제해결 뿐만 아니라 더불어 사는 문화를 만들고자 애썼다. 그래서 주말 저녁 이주노동자들과 생맥주 한 잔을 하기도 하면서 정겹게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들은 다른 무엇보다 자신들이 더불어 사는 친구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했고, 자신들의 삶을 우리와 나누고 싶어 했다. 우리는 그저 그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했을 뿐이었다.

얼마 전에도 자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역시나 별 용건 없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몸조심하라는 안부 전화였다. 스리랑카에 한번 가겠다고 한지가 10여 년째인데, 이번에도 같은 대답을 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진짜 한번 가야겠다. 라면 한 박스 사들고 친한 벗으로서 말이다.

한준 (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