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코로나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 / 김지영

김지영 위원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빙교수)
입력일 2020-03-24 수정일 2020-03-24 발행일 2020-03-29 제 3188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마음을 짓누르는 불안과 공포, 피폐해진 경제사정, 온갖 제약을 받는 불편한 생활….

어떤 이는 “여럿이 둘러앉아 같은 그릇의 팥빙수를 퍼먹던 일이 꿈만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성당에서 모르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미사를 본 일을, 또 어떤 이는 친구들과 공연을 보고 가족과 해외여행을 하던 일을 떠올렸다. 마치 전생에 있었던 일들처럼.

이들은 “일상이 기적인줄 비로소 깨달았다”고 입을 모았다. “무미건조하기만 한 줄 알았던 일상생활이 감사한 것인 줄 이제야 알겠다”는 이와 “나 자신의 일상생활, 아니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는 이도 있었다.

일하고, 놀고, 먹고, 마시고, 기도하고, 공부하고, 생산하고 소비하는 모든 일상생활은 코로나를 겪으며 모조리 그 방식을 바꾸었다. 처음엔 “어, 꼭 이래야 되나?” 싶었지만 살기 위해선 익숙해져야만 했다. 점차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일상생활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 감사하고도 그리운 일들이 됐다.

마침 사순시기. 그리스도교 신자이건 아니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코로나19 때문에 모두가 혹독한 황야를 가고 있다. 황야를 거친 뒤에는 사순 이전과 사순 이후의 삶이 달라지는 것이 타당하다. 코로나19를 겪기 이전과 이후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때 달라진 일상생활의 학습효과가 점차 정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는 여러 생활 방식, 사고방식에서 서서히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가령 학교는 온라인 강의를, 직장은 재택근무를 언제라도 쉽게 하고, 개인은 자주 손을 씻는 등 위생에 더 신경을 쓰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동시에 일정한 거리도 둘 것이다. 약자들의 존재에는 더 신경을 쓰는 사회가 될 것 같다.

그 밖의 무슨 일이라도 방식을 정할 때에는 고정된 관행에 따르기보다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고 융통성 있게 대처하지 않을까.

비단 코로나의 경우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역병의 팬데믹 이후엔 언제나 사람들의 삶에 큰 변화가 닥쳤다. 가령 15세기 유럽의 페스트 대유행 이후에는 각 분야에서 낡은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고 휴머니즘이 대두했으며 시대사조는 르네상스로 이어졌다.

사순시기는 황야에서 맨손으로 밭을 갈고 눈물로 씨앗을 뿌리며 간절하게 성찰을 할 때다. 그렇게 모진 간난과 고초를 잘 견디어 낸 뒤에는 성숙한 결실이 따른다. 그동안 코로나19 팬데믹, 혹독한 사순시기를 거치면서 보여준 우리 국민들의 진지한 성찰과 노력, 헌신은 코로나 이후 사회적 성숙이라는 결실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IMF때의 금 모으기와 태안 기름유출사건의 해안 봉사 등 역사적 경험이 점차 집단적 유전이 돼가는 것일까.

대구지역 의료진과 시민들은 물론이지만 대구 환자들을 지역 시설로 모셔간 광주 사람들, 대구로 달려온 전국의 의료진과 봉사자들, 시설을 내준 기업체들, 장사가 안되는 상인들에게 임대료를 깎아준 건물주들…. 각종 매체에 비친 이들을 보면 그러면서도 참으로 겸손하고 열정적이며 배려심과 인내심, 절제력이 강했다.

이들에 대해 미국 ABC방송(이언 기자)은 “공황도, 폭동도, 혐오도 없다. 침착함과 고요함이 버티고 있으며 사재기도 없다”고 경이로움과 감동을 섞어 전했다.

코로나19 발생초기의 대처 잘못 등 몇 가지 흠은 있지만 정부관계자들의 노력도 폄훼할 순 없다. 지금은 21대 총선(4월15일)기간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총선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은 가운데 여야 정당들은 코로나19 사태 역시 정치공학적 소재로 활용했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둘러싸고 벌이는 진흙탕 막장싸움은 코로나보다 역겨웠으며 이는 국민들의 코로나19 투쟁을 방해하는 바이러스 덩어리와 다름없었다.

국민들의 이웃을 위한 헌신, 그 연대와 공조는 한차례 더 큰 역사적 경험을 축적하면서 집단적 유전에 힘을 보탰을 것으로 본다. 코로나19 이후 달라질 우리의 삶의 방식에서 그것은 역동적으로 선순환 작용을 할 것이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마르 12,33)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지영 위원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