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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리즈시절 / 김우정 신부

김우정 신부 (제1대리구 병점본당 주임)
입력일 2020-03-24 수정일 2020-03-24 발행일 2020-03-29 제 318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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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시절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전성기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인데, 의외로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모습이 그때의 시간에서 드러나기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지 못하고 전성기의 모습에만 매여 있다가 보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우를 범하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 지혜로운 모습은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을 인정하게 되면 그 순간 새로운 삶이 시작되지만, 그렇지 못하고 과거에 매여 현실을 부정하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면 개선의 여지라는 것은 영영 사라지는 법이다. 이따금 ‘왕년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그렇다. 자랑할 것이 왕년밖에 없다면 현재는 별 볼 일 없다는 반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때의 모습, 그때의 사고, 그때의 영광에만 매여 있다면 나날이 변화하고 새로워지는 현재에 적응하기란 요원해지는 법이다.

그런데 그런 지혜를 갖추지 못하고 현실을 바라보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안타깝게도 책임을 지는 여러 위치에 있는 이들의 모습도 그럴 때가 있다. 그래서 고집을 부리고 무리수를 두고 남을 상처 입히면서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내가 이런 사람이고 이런 것을 이뤄왔다고 하는 것으로 자신의 매력을 보이면서도 책임에서는 몸을 사리려 드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여기저기서 보곤 한다.

주께서 살아가시던 과거의 이스라엘에도 그런 이들이 있었다. 한때 잘나갔던 과거에 매인 채로 그것을 주추 삼아 다른 이들에게 무거운 짐을 얹어놓고, 자신들은 선택받은 이들이라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하느님 백성의 피와 땀과 눈물을 쥐어짜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묵직한 일침을 가하시곤 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언제나 힘과 권위가 있었다. 그 말씀을 하시는 분께서는 어떠한 제약이나 남의 눈에 좌우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말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분이셨기 때문이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진실한 가르침을 주시고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함께 사셨다. 하느님은 사람이 되셨고, 사람이 되신 분은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고 걸으셨으며, 거기서 사람들은 용서받고 치유되고 찬미했음을 성경은 전하고 있다.

진정한 리즈시절은 화려하고 웅장했던 시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사람다운 사람이었을 때, 누군가의 진정한 이웃이고 친구였을 때, 가진 것이 없어도 서로 알고 지켜보고 만나고 잠시 한마디 나누는 짧은 언어라도 더없이 진실했다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고 행복했을 때가 아닐까. 그렇게 사는 모든 삶은 지금도 진행되는 ‘전성기’다.

김우정 신부 (제1대리구 병점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