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어디서나 찾아오시는 분 / 김우정 신부

김우정 신부 (제1대리구 병점본당 주임)
입력일 2020-03-17 수정일 2020-03-17 발행일 2020-03-22 제 318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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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아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다. 순례 중에 유다 광야에 잠깐 들러 잠시 시간을 가지는 중 뉘엿뉘엿 져가는 구름 아래서 모래 먼지를 날리며 라이트를 켜고 우리 일행을 향해 다가오는 차 한 대를 발견했다. 어째서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궁금해서 함께 간 가이드께 다가오는 차에 대해서 질문했더니 관광객들을 발견하고 뭔가 팔러오는 잡상인이라고 했다. 광야든 어디든 대상만 있으면 가리지 않고 찾아가는 의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모습에서 어쩐지 하느님 생각이 났다. 그분도 저렇게 우리가 있는 모든 곳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시는 분이신데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을 우리는 잡상인 취급하며 말 한마디 듣지도 돌아보지도 않고 내쫓거나 외면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아브라함처럼 그분을 알아보고 안으로 맞아들여 극진히 대접하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사람에게 입이 하나고 귀는 둘인 이유는 말하는 것의 두 배로 들으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말대로 살면 아마 우리는 최소한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칭송받는 경지에는 이를 것이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그게 쉽지가 않다. 게다가 사제인 나 자신처럼 자주 말하는 위치에 서다가 보면 필요한 말이 아니라 쓸데없는 말들도 많이 하기 마련이다.

그런 일이 잦다 보니 사람들이 자기 말을 안 들으면 그게 서운해지고 그래서 또 말하다 보면 가끔 자신이 하느님인 듯 행세하게 되는 일도 생기곤 한다. 하느님은 틀리면 안 되니 누가 자신에게 문제를 제기해도 경직된 결론을 정해놓은 채, 여러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완고한 모습을 보이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듣는 척만 하는 일도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스테파노를 박해하던 이들처럼 소리를 지르고 귀를 막으며 돌을 던지게 될지도 모른다.

때로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은 갑작스레 찾아오는 잡상인처럼 우리를 귀찮고 피곤하게 만들 때도 있다. 그런데 그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면 하느님께서 알려주시는 길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틀린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옳다고 바락바락 우겨대며 고집을 부리다 진흙 구덩이에 빠지는 이가 되지 않기 위해 나 자신도, 우리도, 하느님의 백성들과 교회도 어디서나 들려오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를 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기다리며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0)

김우정 신부 (제1대리구 병점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