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미술로 만나는 성 요셉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입력일 2020-03-10 수정일 2020-03-10 발행일 2020-03-15 제 3186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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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하느님 뜻 생각하며 성가정에 헌신했던 아버지 
주목받지 않는 평범함 속에 가장과 보호자 역할에 충실 삶의 매순간 하느님 뜻 실행
요셉 성인이 보여준 모범처럼 먼저 하느님 말씀 귀 기울이며 내적 성숙과 가정성화 힘써야

3월 19일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이다. 이날 교회는 주님 천사의 명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예수님의 양부로 헌신한 성인의 믿음과 덕을 기린다. 교회 안에서 성인에 대한 신심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성미술로 표현돼 왔다. 성 요셉 대축일을 맞아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가 그리스도교 미술에 묘사된 요셉 성인의 모습을 살폈다.

푸른 하늘과 상쾌한 바람, 들판의 꽃과 하늘거리는 나비, 오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아기들의 귀여운 재롱, 평범해 보였던 이 모든 일상이 새삼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자연은 하루가 다르게 생명의 빛깔로 바뀌고 있지만 유독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명과는 동떨어진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모두가 2020년 새해를 맞아 부푼 꿈을 갖고 맞이했으나 예상치 못한 코로나19의 발생과 확산으로 두려움 속에 움츠려있다.

코로나는 세계인들의 일상뿐 아니라 신앙생활조차도 바꾸어버렸다. 급기야 최근에 우리나라 모든 교구에서 신자들과 함께 봉헌하는 미사가 중단되었고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에도 머리에 재를 받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신자들은 매일의 미사가 얼마나 소중하고 은혜로웠던가를 뒤늦게 깨달으며 그리워한다.

교회력으로 새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은 성 요셉 성월이며 19일은 성인의 축일이다. 요셉 성인에 대한 신심은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1870년 비오 9세 교황은 요셉을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대목구장을 맡았던 앵베르 주교의 요청으로 1841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에 의해 ‘성 요셉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가 조선 교회의 공동수호자로 선언되었다. 교회에서는 요셉을 임종하는 사람들의 수호자이며 노동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그리스도교 미술에 묘사된 요셉 성인의 지물은 꽃이 핀 지팡이나 목수의 도구들이다.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에는 요셉에 관한 단편적인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의 삶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평범해 보인다. 나자렛에서 목수였던 요셉은 마리아의 배우자였고, 아기 예수의 양부였다. 성가정을 꾸린 후에는 가장과 보호자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살았다.

성경에서 요셉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의로운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꿈에 자주 나타난 천사의 지시, 즉 하느님의 뜻을 귀담아 듣고 그 말씀을 온전히 따랐던 요셉은 참으로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머리로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 안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뜻을 되물으며 묵묵히 따랐던 사람이 요셉이다.

동정녀 마리아가 약혼한 상태에서 성령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했을 때, 호적 조사를 위해 베들레헴으로 내려갔을 때, 그곳에서 여관을 구하지 못해 마리아를 말구유간으로 데려갔을 때, 마리아가 아기를 낳아 구유에 눕혔을 때, 헤로데의 칼날을 피해 이집트로 가족들을 데려갔을 때, 그곳에서 빠져나와 다시 나자렛에 정착해 살았을 때, 성전에서 소년 예수를 잃었을 때, 예수가 공생활을 하기 전에 요셉이 하느님 품에 안기게 되었을 때, 나자렛 성가정의 가장인 요셉의 어깨에 놓인 삶의 짐과 고뇌는 절대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성가정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헌신했던 요셉 성인을 생각하면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가족을 위해 한결같이 자신을 내어준 아버지의 삶과 기도가 없었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세상의 아버지들은 나자렛의 요셉처럼 하루하루를 힘겹게 산다.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지만, 아버지들은 가족의 부양과 건강을 위해 주저 없이 일터와 거리로 나간다. 자신이 아니라 가족들의 입에 씌워줄 마스크 한 장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요셉을 만난다.

지금 코로나19로 겪는 고통은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었지만 어느새 삶 곳곳에 자리 잡았다. 이 고통 속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깊은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자신의 내적 성숙이나 가정의 성화보다도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바깥을 향해서 내달리며 살지 않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순 시기는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자신과 교회, 사회와 세상의 참모습, 즉 본래의 모습을 찾아 나서는 거룩한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고통을 겪는 이 시기에 우리도 요셉 성인처럼 먼저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바라보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보다 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각자가 힘을 모으면 생명 가득한 새날 새봄은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올 것이다.

최영심, 아기 예수의 성전 봉헌, 1999년, 유리화, 방화3동성당, 서울.

무리요(1618~1682), 나자렛 성가정, 1665년경, 유채, 160×46㎝,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스페인.

예수 성탄, 12세기, 카탈루냐 박물관, 바르셀로나, 스페인.

조광호(1947~ ),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족(부분), 2005년, 목판에 유화 금박, 작가 소장.

요셉의 임종, FRP, 성 프란치스코 성당, 산티아고, 스페인.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