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가톨릭신문‐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공동기획 (18) 중국문화와 복음화(상)

이근덕 신부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연구위원·수원교구 사목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0-03-10 수정일 2020-03-10 발행일 2020-03-15 제 3186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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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분명한 상하 질서에도 ‘오직 도리만 따른다’는 정신 중요시
사회 안정 위한 상하 등급 구별 존재하면서도
공공질서 유지와 상하 간 일치하는 사회 추구
군신 관계에도 ‘군주보다 도리가 먼저’라 생각

선교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는 그 지역의 전통 가치관과 사회질서 그리고 삶의 양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지역은 오랜 역사 안에서 중국문화의 영향을 광범위하게 받아 왔다. 그러므로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는 동아시아 지역 복음화의 선결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두 차례에 걸쳐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연구위원이자 수원교구 사목연구소 소장인 이근덕 신부의 기고를 통해 중국문화 안에서도 주류를 차지하는 유교 문화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중국문화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2017년 12월 16일 중국 상하이의 성 이냐시오 대성당에서 신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CNS자료사진

■ 유교 문화의 이상사회

유교 문화의 이상사회는 당연히 대동사회다. 대동사회는 곧 ‘사회의 공공질서가 유지되는’ 사회를 말한다. 이 말은 「예기」의 ‘예운’편에서 유래한다.

“큰 도가 행해지면 곧 사회의 공공질서가 유지된다. 어질고 능력 있는 인재를 선발해 사용하며, 신용을 중시하고 화목하게 지내고자 노력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 가족이나 친구들만을 위하는 집단이기주의를 고집하지 않는다. 나이든 노인을 공경하며 젊은이들을 등용하고 어린이들이 잘 자라게 배려한다. 홀로 외로운 이들을 돌보고 병든 이들을 부양한다. 남자들은 본분에 걸맞은 직업이 있고, 여자들은 분수에 걸맞은 배우자가 있다. 재화가 남아돌아 쌓아두지 않으며, 능력이 남아돌아 이기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니 사회에 도적이 들끓지 않는다. 그러므로 외출을 하여도 문을 잠글 필요가 없으니 이를 일컬어 대동사회라고 한다.”

유교의 이러한 대동사회의 이상은 후대 사람들의 공통된 정치적 이상이 되었다. 근현대 시기의 강유위가 무술변법을 제창했을 때에도 바로 이 대동세계를 이상으로 삼았다. 손중산이 민족혁명을 일으켰을 때도 바로 이 대동세계를 목표로 추구하였다. 이 대동세계는 국가와 민족과 계급의 구분이 없는 세계이며,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존중받고 밤에 문을 잠그지 않아도 되는 사회이다.

한편 유교는 ‘소강’의 사회도 말한다. ‘소강’의 사회는 군신, 부자 등의 등급 구별이 있는 사회다. 대동사회의 이상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실현 불가능하다. 좀 더 실현 가능한 이상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실을 고려한 ‘소강’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선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는 등급이 있어야 한다. 만일 등급이 없다면 그 사회는 곧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순자는 서로 간의 구분을 명확히 함으로써 그 무리를 안정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더 나아가 모든 상하 관계의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일치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정책이 민심에 부합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책들이 민심에 부합할 때 비로소 상하 관계가 일치를 이룰 것이요 그 사회가 화합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렇듯 ‘소강’사회는 각각의 집단이 서로 화합을 이루며 공존하는 사회이다. 거기에는 등급과 차별이 분명히 존재한다.

■ 유교 문화의 인간관계

인간관계에 있어서 유교는 장유(長幼)의 서열을 매우 중요시한다. 특별히 오륜으로 대표하는 기본적 인간관계 안에서의 윤리 질서 확립을 강조한다. 「예기」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국가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네 가지 방면을 잘 고려해야 한다. 기본 정서(人情), 본분 의식(人義), 백성의 이익(利), 환난(患).” 이 중에서 본분 의식에 관하여 「예기」는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 “부모는 자애롭고 자녀는 효성스러우며, 형은 선량하여 모범이 되고 동생은 존경하여 따르며, 남편은 의롭고 아내는 순종하며, 노인은 은혜롭고 어린이는 유순하며, 임금은 어질고 신하는 충성스럽다. 이 열 가지를 일러 인의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는 상호성을 지닌다. 만일 임금이 어질지 않다면 어찌하는가? 유교의 윤리체계에 의하면 신하는 이에 불충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맹자에게 물었다.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은 모두 이전 왕조의 신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자신의 임금인 은나라의 주왕을 살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나는 일찍이 신하가 임금을 살해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무뢰배 하나를 주살했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맹자에게 있어서 포악한 정치를 일삼은 은나라의 주왕은 이미 왕이 아니라 백성의 적이요 한갓 무뢰배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러한 왕에게 충성을 바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순자에 이르러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순자는 도를 따라야지 군주를 따를 필요는 없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곧 도리에 근거해서 행동해야지 그저 맹목적으로 군주를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탕왕이 하왕조를 뒤집었고, 무왕이 은왕조를 전복시킨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 역사상의 ‘탕무혁명’이었다.

당연히 역사상 우국충정을 지킨 충신들과 삼강오륜의 법도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삼강오륜의 법도 그 자체가 지닌 본연의 사상을 놓고 볼 때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윗사람의 뜻을 무조건 순종하여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 안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임금에게 간언하는 신하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황제가 잘못을 하였을 경우 목숨을 내걸고 간언을 하여 잘못을 시정하려 하였다. 바로 여기에 “도리를 따라야지 군주를 따라서는 안 된다”는 이념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사내대장부’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은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맹자는 대장부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조건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로 부귀하더라도 음란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빈천하더라도 여기저기 빌붙어서는 안 된다. 셋째로 위세와 무력 앞에서 비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대장부의 품격이며 유교가 제창하는 사내대장부의 기본준칙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유교의 인간관계는 상하 등급의 질서와 구별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그 질서와 구별 안에는 반드시 권리와 의무가 상호작용을 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오직 도리만을 따라야 한다”는 기본정신이 전체 질서를 유지하는 중심축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근덕 신부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연구위원·수원교구 사목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