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코로나19 특집] 미사 중단된 사순 시기… 사제·수도자·평신도의 소회

입력일 2020-03-10 수정일 2020-03-24 발행일 2020-03-15 제 3186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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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 / 허영민 신부(의정부교구 파주 야당맑은연못본당 주임)

“그리스도인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하는 사람입니다”

재의 예식 없는 재의 수요일 보냈지만 우리는 세례신앙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주님 수난 묵상하며 참된 사순 보내야

성당이 문을 닫고 신자와 함께하는 미사가 중지된 재의 수요일. 사제와 신자들은 재의 예식이 없는 재의 수요일을 안타깝고 슬픈 마음으로, 가슴 한구석에는 혐오의 마음까지 자리 잡은 채 지내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아프지만 그 누군가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상처 나서 피를 흘리면서도 다른 이의 상처를 돌보는 사람, 그들이 진짜 예수님을 믿는 예수쟁이가 아닐까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창세 3,19)

내게 주어진 오늘의 시간이 힘들고 어두워도 시간을 낭비하며 빈둥거리지 말고 세상에 태어난 소명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죽음의 문을 향해 천천히 당신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게 바로 세상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시간입니다.

성지를 태운 재는 인간의 죽음과 죄로 인한 나의 타락을 기억하고 육체의 덧없음을 묵상하게 합니다. 나의 몸은 하느님 나라와 그 생명을 찾기 위해 이곳에 잠시 머물고 가는 도구요 수단입니다. 그렇다고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나의 몸이 무의미하고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본질에 더 충실하고 내 본향이 어디인지, 내 생명의 시작과 마침은 어디인지를 마음에 새기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접한 성모님처럼 곰곰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오늘 그리고 지금, 하느님의 말씀과 계명이라는 약속에 충실함을 잊지 않기 위해 머리에 재를 얹습니다.

일생 동안의 가장 먼 여행이 머리에서 가슴까지라고 했나요?

그러나 또 하나의 먼 여행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여럿이 함께 만드는 삶의 현장입니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벌어지는 삶의 현장입니다. 그 현장에 함께하기 위해 이런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머리 좋은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만 못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발 좋은 사람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오늘 비록 머리에 재를 얹지는 못하지만 회개의 재보다 먼저 감사의 재를 머리에 얹게 했으면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늘 감사의 태도를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시기를 맞이했지만 예수님 수난의 열매에 감사하는 마음 없이 머리에 재를 얹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순 시기는 아버지 하느님만 보시는, 아버지만이 아시는 기쁨에로 초대받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앞에서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나의 참 모습을 찾아가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길 축원 드립니다.

신앙이 힘을 잃어가고 이교적인 세상이 판치는 오늘 여기에서 세례신앙을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기적입니다. 여러분은 그 기적을 살아가는 사람, 그리스도인입니다.

■ 수도자 / 이석자 마리크레첸스 수녀(예수성심전교수녀회·강동성심병원 원목)

“이 십자가를 부활의 마중물로 받아 들이게 하소서”

“미사 중단된 현재에 낙담하기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 위해 기도할 때 대송·묵주기도 바치며 희망 가져야”

새벽 5시 45분 늘 그러하듯이 습성화된 나의 발은 어떠한 부딪힘도 없이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불꺼진 성당. 예수님이 계신 감실의 불빛이 너무도 처연하게 느껴지는 오늘, 재의 수요일. 재의 수요일에 미사가 없다니….

감실을 바라보며 성가 58번을 읊조립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하느님, 생명을 주시는 나의 하느님….” 환희와 찬미소리가 없는 적막한 성당. 가슴이 미어집니다.

수십 년 전 그날 머리가 어떻게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새벽미사를 3일 정도 못간 나는 죽어도 성당에서 죽는 것이 행복할 것 같다는 엄청난 교만(?)으로, 새벽 어둠을 가르며 다가서는 바람결이 너무 좋아서, 어린이처럼 신바람 난 나의 발은 새벽6시, 언제나 그러하듯 성당에 가 있었습니다.

3일이나 미사를 못 오다니 예비신자일 때부터 매일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한 이래, 내가 그렇게 아팠다는 말인가요? 기어가다시피 도착한 성당, 아무도 없습니다. 감실에 불도 꺼져 있는… 두려움. 가려진 십자가. 열려 있는 감실. 무서움에 떨고 있는 나의 귓가에 들린 성가 58번. 너무도 미세하게 들리는 노랫소리를 따라 내려가니 그 곳에 계신 예수님. 앞에 엎드려 몇 시간을 통곡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작은 몸에 이토록 눈물이 많을 줄이야.

그날은 성삼일중 성금요일. 몸은 기진하였지만 정신은 너무도 맑아진 나, 그토록 아프던 머리가 이렇게 청명해질 수 있는지. 생명수, 아니 지혜의 정수가 온몸에 퍼져 산소 방울 터지는 청량감이 머리에서 발 끝까지 흘러 내렸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기위해서 드리는 매일의 미사는 나의 생의 목적, 삶의 전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고통 중에 마주한 부활의 기쁨. 삶의 부활을 더욱 더 가까이 느끼고자 수도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미사가 없다니. 내가 잊고서, 몸이 아파서, 고통이 힘들어서가 아닌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없는 이 상황.

“어찌하여 내가 낙심 하는가. 불안해하는가. 하느님을 기다리리라. 나를 구해주신 분 나의 하느님.”

나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며 살고 계신 모든 분들, 특히 병중에 계신 분들. 혹여나 감염이 될까봐 만나 뵐 수 없는 안타까움이 가득합니다. 코로나19로 힘겨워하는 우리 모두와 불철주야 애쓰시는 행정관계자 모든 분들, 우리들의 기억에서 잊어버리면 안 되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우직한 소처럼, 힘차게 뚜벅뚜벅 한걸음 한걸음 함께 기도하며 가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어디나 계신 우리 주님께,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오시는 주님께, 성당에 모여 함께 미사는 봉헌하지 못하지만 방송미사를 보며 감실 앞에 앉아 성체조배를 하고, 대송을 합니다.

또한 성모님과 함께 묵주기도를 봉헌하며 순간순간 화살기도로 어려운 이 시기를 잘 견뎌, 주어진 십자가를 부활의 마중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믿음을 키워 주십사 기도합니다.

‘실천하는 믿음’을 강조한 바오로 사도가 생각납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이 아닌 실천하고 행동하는, 예수님의 작은 제자들이 되어 감실에 계신 예수님을 기쁘게 모실 그 날이 곧 오리라는 희망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힘차게 “하느님을, 나의 하느님을 찬양하리라.”

■ 평신도 / 손병선(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회장)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코로나보다 무서운 ‘공포 바이러스’ 고통받고 수고하는 이 위해 기도하고 기도·단식·자비 실천하는 시간 갖길”

‘코로나19’ 사태로 국가적 재난에 직면해 236년의 한국천주교회 역사상 미사가 없는 초유의 사태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감기’라는 재난 영화에서 최악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하는 장면을 보면서 먼 미래에 이렇게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그 영화 같은 상황을 현실로 접하고 있습니다.

크루즈선 봉쇄로 인해 바이러스의 거대한 배양접시가 된 일본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사이 중국이란 가시관에 방심했던 우리나라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적이 오지 않을 것이라 믿지 말고 적이 언제 오더라도 내가 준비돼 있음을 믿으라”고 했던 병법의 대가 ‘손자’의 말을 떠올리며 세월호, 사스, 메르스에서 배운 학습 효과가 매뉴얼대로 작동이 안 된 결과라 여겨져 심히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일수록 위축된 활동과 심리적 패닉에서 생기는 ‘마음의 바이러스’로 마음의 지옥을 만들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공포의 바이러스를 신앙의 백혈구로 슬기롭게 극복하며 기도 안에서 얻은 다양한 지혜를 발휘해야겠습니다.

우리는 국가적 위기마다 하나가 돼 강인한 애국심과 성숙한 연대 의식으로 극복해 왔습니다. 어려울 때 더 힘들어지는 이들은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취약 계층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웃과 연대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입니다.

최대의 피해를 입고 있는 대구, 경북 시·도민들은 높은 의식 수준 속에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대구대교구가 한티피정의 집을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한 사례나 지자체 간 병상 연대, 각계각층에서 쏟아지는 성금과 기부, 착한 임대인들의 나눔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손길이 위대한 대한민국, 희망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난 재의 수요일에 열린 일반 알현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네트워크에 증폭되는 너무나 많은 언어폭력에 오염돼 있으므로, 복음과 친숙해지고 주님을 당신이라고 부르고, 건전한 마음의 생태학에 전념해야 한다”고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없는 가짜 뉴스나 불필요한 말로 화를 돋우거나 말의 바벨탑을 쌓는 모습이 우리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듭니다.

국가적 재난 상황임에도 정치권에서는 진영 논리와 이해득실에 메인 거친 막말과 궤변의 말싸움이 마치 총 없는 전쟁 수준입니다. 오는 4·15 총선에서 국민적 선거 혁명을 통해 민도(民度)와 국격을 높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역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건으로 물줄기가 종종 바뀌듯 이번 ‘코로나19’에는 ‘신천지’가 최고의 숙주가 돼 그간 우려했던 실체가 세상 밖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정상적 일상을 도난당한 채 불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런 때일수록 위기를 기회로 삼는 역발상이 필요한 때라 여겨집니다.

우리는 지금 파스카를 향한 40일 여정의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자기를 맡기는 시기며 본질적인 것에 귀 기울여 기도·단식·자비를 실천하는 때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쉼을 통해 복음과 친숙해지고 주님과 대화 시간을 가져 보셨으면 합니다.

또 우리가 무심코 지냈던 일상들이 얼마나 기적 같았는지, 얼마나 감사히 여겨야 하는지를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새롭게 체득하기를 바라면서 지금 고통받고 수고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로 응원하며 은총의 사순시기를 잘 지내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