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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대화] 68

김재만ㆍ교육학 박사ㆍ대구교대 교수
입력일 2020-03-09 수정일 2020-03-09 발행일 1977-11-13 제 1080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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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위해선 우선 이해해야
결혼 초 부부 싸움은 서로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 함은 그 누구를 안다는 말로 풀이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사랑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어머니만큼 아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어머니입니다. 왜 그럴까요? 나는 여기서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만큼 아들을 사랑하는 자가 또 사랑할 수 있는 자가 이 세상에 다시 없다는 말입니다. 어머니만큼 그 아기에 대해서 아는 자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머니는 그 아기의 전부를 아는 것입니다. 생리도 알고 심리도 알고 취미도 성미도 다 아는 것입니다. 불알 밑에 손만 넣어 보고도 이놈이 오줌이 마렵구나、젖이 먹고 싶겠구나 코에 바람을 쐬고 싶구나 일어나고 싶구나 하고 훤히 다 아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고 의술이 발달되었어도 의사의 청진기로서는 도저히 이러한 아기의 생리와 심리를 진찰하지 못합니다. 의사가 어머니만큼 아기를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어머니만큼 아기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머니 밑에 자라나온 아기는 동시에 어머니를 사랑하게 됩니다. 기쁘나 슬프나 어머니를 부르게 됩니다.

그러다가 나이 이십여 세 되면 장가를 가고 어머니를 떠나게 되지요. 그때 어머니 마음은 슬퍼집니다. 자기의 분신인 아들이、그리고 사랑의 대상인 아들이 자기 곁을 떠나는 슬픔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들은 자기 아내와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들게 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아무런 장벽 없는 사랑을 하게 됩니다. 가족은 싸움도 시비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가 되기 위해、주고받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마찰 없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마찰 없이 주고받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다 알지 못하고 남편이 아내를 다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는데 하는 것이 남편의 불평이고 우리 아버지는 결코 그렇지 않았는데 라고 하는 것이 아내의 불평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결혼 초기에 청춘남녀의 그 불같은 사랑에는 하나가 비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즉 대상에 대한 이해(理解)입니다.

이해가 없는 사랑은 결코 사랑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이해는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이해는 대상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을 사랑하기 위하여 상대방을 연구하여 상대방에 대한 지식을 가지지 않으면 이해는 결코 생길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못난 어머니가 여기 있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 어머니도 그의 아들의 잘못은 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차타레 부인의 사랑」은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읽어본 사람은 그렇게 나쁘다고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대상에 대하여 지식을 갖는 만큼 그 대상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고발하지 못하고 아들이 어머니를 고발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이해를 낳고 있습니다.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이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지성을 근거로 한다는 것은 지성이 사랑을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지성으로 말미암아 대상을 믿게 되고 이해하게 되며 이해는 관용을 낳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성없는 사랑이 없다고 풀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용서하는 것이나 부처님의 대자대비의 그 관용이나 어버이의 자식에 대한 신뢰와 관용이 다 같은 사랑입니다. <계속>

김재만ㆍ교육학 박사ㆍ대구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