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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띠마 성모 발현 60주년 특집] 3 메시지의 응답-푸른군대

입력일 2020-02-27 수정일 2020-02-27 발행일 1977-10-02 제 1075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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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미국인 콜겐 신부가 창설 
기도와 보속으로 공산주의자에 대항
“매일 묵주의 기도 바치고 매월 첫토요일에 미사·영성체 해야”
◆속죄의 첫 토요일

『나의 딸아, 배은망덕한 인간들이 하느님을 배반하고 모독행위를 자행함으로써 나의 이 성심을 가시로 꿰뚫는 것을 너만이라도 위로해 다오. 그리고 5개월 동안 매월 첫 토요일에 고백성사와 영성체를 하고 나에게 봉헌할 지향을 갖고 로사리오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묵주의 기도를 드리고15분 동안 나와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들 전체에게는 영생에 필요한 은총을 줄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가 임종할 때 도울 것을 약속한다고 전해라』-1925년 12월 10일의 발현에서 성모께서 루치아 수녀에게 하신 말씀-

■창설자 콜겐 신부

1946년 11월 잿빛으로 흐린 어느 음산한 날이었다. 미국「플레인필드」에 있는 성마리아본당 주임신부는 망자를 위한 미사를 드리고 있다가 돌연 비틀거리더니 제대에서 쓰러져버렸다. 심장마비였다.

이 신부는 그 후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게 되었다. 의학적으로 살아나기가 절망적이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12월 8일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축일、그는 성모께 간구하였다.『만일 당신이 나의 병을 다시 낫게 해주신다면 나의 여생을 당신을 위한 사업에 바치겠다』고. 그 다음날부터 병세는 호전、의사들이 단념한 이 병자가 8일 후에는 나아서 퇴원하게 되었다.

■푸른군대의 탄생

콜겐 신부는 퇴원 후 얼마 동안은 성모와 약속한 것을 이행할 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주의 섭리는 그를 다시 자극시켰다. 그는 어느날「더ㆍ크레일」이라는 잡지에서「파띠마」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이것을 읽은 콜겐 신부는「파띠마」메시지의 뜻을 완전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날 강론시간에 콜겐 신부는「파띠마」와 세계 구원의 메시지와 또 세계 평화 유지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또한 세계 구원과 평화 유지에 대한 조건들을 제시했다.『여러분은 매일 20분을 할애해서 묵주의 기도를 바치지 않으렵니까? 여러분에게 요구되는 희생을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바치지 않으렵니까?』

『전쟁이냐 평화냐를 결정하는 열쇠는 여러분 손에 주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공산주의의 붉은 군대에 대적해 싸울 푸른군대를 조직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이 싸움을 수행하는 데 사용할 무기는 탱크도 대포도 아닙니다.

다만 기도와 보속으로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을 쳐 이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들을 회개시키려는 것이지 저들을 예속시키려는 것은 아닙니다』

콜겐 신부는 10주에 걸쳐「파띠마」성모의 메시지에 대해서 강론했다 신자들은 메시지의 요청을 서면으로 약속하게 되었고 드디어 푸른군대가 탄생한 것이다.

■푸른군대란?

푸른군대는 바로「파띠마 메시지에 대한 응답」이다. 푸른군대는「파띠마」성모 발현 목격자인 루치아 수녀와의 대담을 통해 성모께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며 또 메시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아내었다. 그러므로 푸른군대는 모든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파띠마」메시지를 현시대에 정확히 전달하고 성모의 요청을 이행함으로써 세계 평화 유지와 인류 구원을 실현하는 신심단체라 할 수 있다.

저 유명한 오상의 삐오 신부는『공산주의자 수만큼 푸른군대 대원이 늘어나면 소련은 회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삐오 신부는 제의실 윗편에「파띠마」성모상을 모셔놓고 푸른군대 대원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푸른군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대원이 되려면

푸른군대 대원이 되려면 다음 네 가지 조건의 이행을 서약하면 된다.

①매일 묵주의 기도를 바칠 것 ②봉헌에 따라 살고 기적의 패를 찰 것 ③매일 생활의 의무에서 오는 희생을 통해 보속을 바칠 것 ④매월 첫 토요일에 미사 영성체를 할 것 등이다.

푸른군대의 서약은 실행하기가 어려운듯하지만 이와 같은 간단한 방법으로 얻는 은총은 무한한 것이며 성모의 인류에 대한 사랑에 응답하는 가장 착실한 길 중의 하나라 하겠다.

■푸른군대의 확장

1950년 콜겐 신부는 그동안 서명받은 약속장을 갖고「파띠마」로 찾아가 성모의 발현 장소에 서약자 명단을 묻었다. 그 후 서약자 명단은 마이크로 필름에 찍어 일 년에 두 번(5월 13일、10월 13일) 발현 장소에 새겨두고 있다.

콜겐 신부는「파띠마」를 방문한 그해에「로마」를 방문、교황 삐오 12세로부터 강복을 받고 격려를 받았다.

묵주의 기도를 드리려는 사람을 한 사람씩 벌어들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거나 콜겐 신부가 활동한 지 불과 4년도 못 되어 이 이념은 범세계적으로 호응을 얻어 현재는 세계적으로 회원이 수천만에 달하고 있다.

푸른군대가 세계적인 기구로 확장됨에 따라 1953년 2월 13일「파띠마」에 국제본부를 두고「파띠마」주교가 이를 직접 관장하고 있다.

■한국의 푸른군대

성모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한국 교회가 푸른군대에 무관심할 수는 없었다. 1953년 3월 11일 미 해병 1사단 군종신부인 마테오ㆍ제이ㆍ스트룸스키 신부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는 한국에 평화의 모후인「파띠마」의 성모와 메시지를 전파해 보겠다는 결심을 갖고「파띠마」평화운동본부에 서한을 보내어「파띠마」의 성모상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파띠마」의 실바 주교는 즉시 공인「순례성모상」을 보내주어 4월 19일부터 순례성모상은 남한 전역을 순회하면서 수많은 신자들로부터 푸른군대 대원의 서약을 받았다. 그러나 활발하던 이 운동은 스트룸스키 신부의 본국 전속으로 계속되지 못하고 열심 있는 신자들에 의한 개인활동으로 퇴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1964년 하안또니오 신부가 부산에 푸른군대 한국지부를 설립하고「파띠마」의 성모상을 모셔옴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을 펴게 되었다. 이 운동은 급속도로 발전、수만 명의 서약자를 확보하고 있으나 이들을 지도할 관심있는 성직자와 투사가 부족한 실정이다.

푸른군대 한국본부는 부산에 있으며 서울ㆍ대구ㆍ전주ㆍ인천에 지부가 조직되어 있다. (자료 제공=푸른군대 한구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