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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코로나19’ 더 많아진 미디어, 더 큰 공포 / 김지영

김지영(이냐시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초빙교수
입력일 2020-02-25 수정일 2020-02-26 발행일 2020-03-01 제 3184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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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보다 공포확산이 더 문제다.”

며칠 전 세계적 바이러스 전문가인 강칠용 교수(80·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대)가 강조한 말이다.

내가 보기엔 오늘날 감염병에 대한 공포확산은 ‘더 문제’일 뿐 아니라 ‘갈수록 더 문제’가 되고 있다. 공포를 확산시키는 수단은 주로 말과 글이고 말글을 실어 나르는 매개체는 미디어인데, 지금 이 미디어들이 엄청나게 많아진 것이다. 기존 레거시 미디어(신문·방송 등 전통매체) 외에 온갖 뉴미디어들이 폭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인터넷 신문’만 해도 8000개 정도. 유튜브 등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1인 미디어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이런 미디어들을 고스란히 접하는 스마트폰은 남녀노소간에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이렇게 많은 매체에 하루 동안 떠도는 뉴스는 6만개(추정).

사스(2003년)나 메르스(2015년) 사태 당시보다 미디어 수는 압도적으로 늘어났고 그만큼 코로나19와 관련해 매체들에 떠도는 말-자칫하면 공포를 키울 수도 있는-은 훨씬 더 많아졌다.

전시 또는 정치·경제·사회적 문제나 감염병 등으로 사회가 뒤숭숭할 때면 정부는 현안과 함께 반드시 동시에 집중 관리하는 것이 있다. 바로 말과 글이다. 떠도는 말과 글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흉흉해진 민심에 자칫 체제의 담장이 순식간에 훌러덩 넘어간다. 세계사의 수많은 사례들이 생생한 교훈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부가 말과 글을 ‘관리’한다는 건 옳지 않은 일일뿐더러 관리를 하려해도 쉽지 않다. ‘표현의 자유’는 기본권 중에서도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만큼 상처가 나기 쉬워, 오직 법과 사회적 관행이 정하는 최소한의 테두리 안에서 관리하는 게 타당하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 발생지인 중국의 정부가 줄곧 취해온 대응 태도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중국은 덩 샤오핑의 ‘개혁·개방’선언 이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융합을 시도, 자유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나라를 키웠지만 역시 국가관리 체제는 전체주의임을 다시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신종 코로나에 대해 ‘사람간 전염’의 위험성을 처음으로 알린, 말하자면 진실을 처음 알린 의사 리원량을 유언비어(가짜뉴스) 유포자로 몰아붙였다. 리는 환자들을 돌보다 결국 그 자신이 코로나에 감염돼 숨져 희생했다. 또 정부를 비판한 쉬장륜 칭화대 법대교수나 천추스 시민기자, 팡빈 시민기자, 보만얼 웨이보 스타 등은 모두 실종됐다. 중국 정부를 비판적으로 보도한 외신기자들은 추방당했다.

체제유지를 위해 여론의 반발을 잠재우려고 말과 글을 독재적으로 관리하는 모습은 우리의 최근 역사에서도 자주 목격하던 바이다. 1980년,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 세력은 5·18 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제대로 전하는 이는 모두 잡아들여 가두고 고문을 가했다. 물론 ‘유언비어(가짜뉴스)를 유포’했다는 혐의였다. 국민의 말과 글을 이처럼 무자비하게 관리하는 방식은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시기까지 이어졌다.(그 이전 박정희 정권 때는 물론이다)

이 같은 일들은 실상 수많은 나라에서 인류의 문명사와 함께 진행돼왔다.

우리 국회에서는 디지털 플랫폼의 ‘가짜뉴스’ 관련 단속법을 제정하려해도 여야의원 상당수가 반대해 아직도 10여개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많은 나라가 비슷한 사정이다. ‘표현의 자유’ 때문이다.

관련법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로는 독일이 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2차 세계대전 때 혐오범죄를 자행했던 역사를 스스로 반성하는 의지로 ‘혐오표현’을 관리하겠다는 의지다. 그밖에는 호주와 싱가포르 정도이며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진실을 규정하는 건 역사적 경험칙상 옳지 못하며 자칫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코로나가 더욱 확산함에 따라 우리 정부의 어려움도 더 커졌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정부가 ‘가짜뉴스’를 단속하겠다는 의지를 너무 자주 표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단지 ‘공지사항’ 정도로 홍보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 환란의 절반은 말이요, 영광의 절반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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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이냐시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