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24) 주임 신부님과 보좌 신부님의 따뜻한 사랑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0-02-25 수정일 2020-02-25 발행일 2020-03-01 제 3184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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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어느 본당의 주임 신부님과 보좌 신부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평소 주임 신부님께 여러 가지 신세를 많이 졌기에 날을 잡아 식사를 대접하려는데 반갑게도 보좌 신부님이 함께 나왔던 것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악수를 하고, 서로의 근황을 묻는데 보좌 신부님께서 내게 말했습니다.

“사실 오늘 저녁에 자모회 회의가 있는데, 회장단에 잘 말씀드려서 여기에 밥 먹으러 왔어요. 하하하. 저는 이 자리가 더 좋아요.”

사실 어느 본당이건, 본당 주임 신부님과 보좌 신부님 사이에는 알 수 없는 미묘한 무엇이 있어서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함께 잘 다니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본당에서 무슨 ‘회의’가 있으면, 오늘 같은 자리에 참석하지 않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그런데 그 본당은 주임 신부님 뿐 아니라, 보좌 신부님도 기쁜 마음으로 가벼운 자리에 함께 와 주셔서, 평소 두 분 신부님의 관계가 어떤지 알 수 있었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식사 중에 본당 생활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데, 두 분 신부님은 본당 신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주임 신부님의 사목 방침에 진심 믿고 따르는 보좌 신부님 마음에서 훈훈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문득, 정겨운 두 분 신부님에게 짓궂어지고 싶은 충동이 생긴 나는 보좌 신부님에게 물었습니다.

“매일 주임 신부님 얼굴을 보고, 사소한 것도 보고하고, 모든 결재까지도 맡아야 하기에 주임 신부님의 존재는 말없는 불편함 그 자체일 텐데. 보좌 신부님은 주임 신부님께 너무 잘하는 걸 보니, 혹시 무슨 꿍꿍이라도 있나요, 하하하.”

그러자 보좌 신부님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사실 본당의 모든 것이 주임 신부님 결정 사항이잖아요. 겉으로는 제가 담당이라고 하는 주일학교나 청년회 같은 경우, 여러 가지 행사나 일련의 모임에 대해서 주임 신부님이 결정하면 되거든요. 그리고 저는 좋든 싫든 그 결정을 따르면 되고요. 그런데 우리 주임 신부님은 그러지 않으세요. 제가 책임 맡은 단체에 대해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꼭 나에게 물어 보세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보좌 신부 생각은 어때?’ 그렇게 주임 신부님께서 저를 편안하게 대해 주시기에 저 또한 자연스럽게 저의 생각을 말할 수 있어요. 그런 다음 저를 배려해서 모든 결정을 내려 주시고요. 그럴 때마다 저는 얼마나 힘이 나고 신이 나는지, 이 자리를 빌려 주임 신부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이에 나는 주임 신부님 얼굴을 보면서,

“우와, 우리 주임 신부님은 어디를 가도 매력 짱이네요. 식을 줄 모르는 인기가!”

무안해 하고, 어쩔 줄 모르는 주임 신부님은 내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습니다.

“아뇨, 아뇨. 내가 뭘 잘 해 준다고. 그리고 생각해 봐요.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젊은 신부님이 내 말을 다 듣나요! 내가 잘해주는 건 하나 없고, 보좌 신부님이 알아서 잘 해요. 언제나 열정을 가지고 아이들과 학생들, 청년들을 만나고, 진심을 다해 단체 책임자들과 일을 공유하고, 본당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는 식사 때마다 대화를 통해 의견을 교환해요. 그러니 자연히 모든 일들이 잘 진행될 수밖에요. 특히 보좌 신부님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내가 오히려 배우는 것이 많아요. 내가 잘해 주는 건 정말 없어요. 오히려 보좌 신부, 본인이 사제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아요.”

사제는 사제를 필요로 한다는 말, 그 말은 정답입니다. 사제들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면서 커져가는 ‘사제들의 사랑!’ 고스란히 신자들에게 나누어질 것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