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말씀대로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
입력일 2020-02-25 수정일 2020-02-25 발행일 2020-03-01 제 3184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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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일
제1독서(창세 2,7-9.3,1-7) 제2독서(로마 5,12-19) 복음(마태 4,1-11)
예수님께서 죄의 유혹에 고뇌·번민하는 모습 보여
결국 세상의 것이 아닌 말씀으로 사탄 이기신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면 믿음 지켜낼 수 있다는 가르침
사순 시기, 주님 사랑 위해 내 뜻을 꺾는 결심해야

교회는 지난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의 의미를 잘 새기며 지내시는지요? 스스로 다짐하고 결단한 일을 성실히 실천함으로 진정 하느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내시기 바랍니다.

사실 주님께서 지고 가신 ‘사랑의 십자가’는 생각만 해도 슬픕니다. 하지만 도저히 가늠되지 않는 그 큰 사랑 덕분에 우리는 사랑이란 누군가의 희생과 대가로 맺어진 결실임을 배웁니다. 교회가 사순 시기를 통해서 추구하는 것이 바로 그 사랑이지요. 때문에 주님의 사랑에 젖어 주님처럼 사랑하고 희생할 것을 묵상하도록 돕고 그 사랑을 배우도록 권합니다. 사순의 가르침은 당신께 배운 사랑을 몸소 살아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운 에덴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한껏 받으며 복된 매일을 살았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런데 허망하게 그 축복을 날려버렸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결과, 죽음의 저주 아래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의 처지를 바오로 사도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로마 7,15)라며 가슴 아프게 토로했는데요. 제대로 된 신앙인으로 살기 원하는 우리도 같은 심정입니다. 모두가 주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을 살아서 주님께 칭찬을 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고민도 하고 애를 쓰는 것 역시 사실이니까요.

때문일까요?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에게 유혹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알려주며 경고합니다. 유혹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허약함을 하와와 아담의 이야기로 들려주고 예수님께서 당하신 극심한 죄의 유혹의 장면을 숨기지 않습니다.

두초 디 부오닌세냐의 ‘그리스도의 유혹’.

복음의 장면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도 죄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 고뇌하고 깊이 번민하셨으리라는 걸 짐작하도록 이끌어주는데요. 완전한 인간이신 주님이셨기에 죄와 치열하게 싸우셔야 했으며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시련을 딛고 이겨내는 용단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매력적이고 감미로운 유혹을 떨쳐내는 것은 예수님께도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살아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강조하신 것이라 싶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주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시다는 의미라 싶습니다. 믿음으로 주님의 뜻을 따르는 일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는 당부라 읽힙니다. 주님께서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힘든 싸움을 치렀으며, 아버지 하느님처럼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서 어려운 역경을 수없이 겪었으며 스스로 이겨내야 했다는 아픈 고백이라 듣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세상의 것이 아닌 기록된 말씀으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사탄의 유혹쯤이야 너끈히 이길 수 있다는 승리의 공식을 선포하십니다. 그래서 사제는 많은 신자분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고’ 혹은 ‘싫어’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립니다. 사제의 입장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계명을 번거롭고 까다로운 것으로 오해한다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이 모두가 순수하게 복음을 가르치지 못한 제 허물 같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무엇을 보태고 더하며 덜어낸 결과인 듯 하여 주님께 죄송한 마음을 치우기 힘듭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삶의 지침은 매우 간단하고 명료하니 말입니다. 언제나 무슨 일에나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면 그만이니 말입니다. 오직 ‘말씀대로’ 따르면 헷갈릴 것도 없고 돌아볼 것도 없이 말끔할 테니 말입니다. 결국 다사다난하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모든 문제는 주님의 말씀을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살아내지 못한 결과이니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 것이 아니며 내 뜻대로 조정할 수도 없는 주님의 것입니다. 죄의 유혹보다 훨씬 강한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는 주님 사랑에 감사드릴 때, 주님의 뜻을 위하여 나를 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위하여 내 뜻을 꺾을 때, 하늘의 용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사순, 주님을 믿는다면서도 주님의 눈치만 살피던 구차한 마음을 씻어야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라 하면서도 한 다리를 죄에 걸치고 지내던 못난 모습에서 돌아서야겠습니다. 내가 물러서기보다 주님께서 양보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도 치워내야겠습니다. 지금 당장 끊어내지 않고 머뭇대며 미루던 결단을 실행해야겠습니다. 흐릿하고 모호한 믿음의 경계를 깔끔하게 정리 정돈할 때, 기쁜 부활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순의 은혜는 외면했던 자신의 십자가를 다시 찾아, 기꺼이 짊어지는 마음에 임합니다. 더 사랑하기 위해서 몰입하고, 조건 없이 순명하기 위해서 혼신을 다할 때 쏟아져 내립니다. 힘에 부쳐 나 몰라라 내던졌던 십자가를 다시 찾아 끌어안는 마음에 사순의 은혜를 담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죄의 곁에서 얼쩡대며 서성이지 않도록, 죄 앞에서 쩔쩔매는 일이 없도록, 미련 없이 돌아서는 지혜를 살아가도록 맹렬히 기도하니 힘내기 바랍니다. 죄의 유혹보다 훨씬 강한 주님 사랑이 우리를 지켜 보호하시니 도전하기 바랍니다. 당신의 뜻이기에 봉사하고 희생하며 먼저 다가가 화해하는 배포를 한껏 키우시길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참된 믿음으로 “돌로 된 마음을 치워 버리고 살로 된 마음”(에제 11,19)을 되찾기 바랍니다. 사순을 보내며 부활의 기쁨은 오직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몸소 체험하기 바랍니다.

통 큰 하느님의 은혜로 모자란 우리 삶에 새로운 가능성이 활짝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