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으로 다시 보는 ‘기생충’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0-02-18 수정일 2020-02-20 발행일 2020-02-23 제 3183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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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탐욕과 무관심을 먹고 사는 ‘기생충’
36만여 가구 살고 있는 ‘반지하’ 통해 기본권 위협하는 가난의 민낯 보여줘
노동으로도 극복하기 힘든 사회 문제
무관심의 세계화가 만든 죄의 구조
양극화 극복은 모두의 의무
구원의 힘으로 약자 사랑해야
봉준호(미카엘)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희화화해 적나라하게 드러낸 영화다. 이 씁쓸한 양극화의 민낯에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는 가난한 이와 부유한 이, 이들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생충’이 던지는 이 시대의 아픔에 교회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으로 ‘기생충’을 돌아본다.

■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

영화는 빛도 들지 않고 눅눅한 반지하방과 유명 건축가가 지었다는 유난히 볕이 많이 드는 넓은 고급 저택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가정은 똑같은 4인 가구지만, 주거하는 곳의 차이는 현격하다. 영화 중 근세(박명훈분)는 “땅 밑에 사는 사람들이 한 둘인가? 반지하까지 치면 더 많지”라는 말로 빛 한줄기 들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현실을 꼬집는다.

영화는 허구다. 그러나 ‘반지하’라는 현실은 우리나라 주거권의 현주소다. 물론 영화는 지상과 지하를 대비하면서 연출하지만, 반지하 자체가 빈부격차의 상징은 아니다. 실제로 국내 반지하 거주자는 점차 줄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구의 1.90%인 36만3896가구(통계청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가 지하에 살고 있다는 사실 또한 현실이다.

교회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로서 주거권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강조해왔다. 교황은 특별히 개인의 권리에서 나아가 ‘가정’의 주거권에 주목했다. 교황은 권고 「사랑의 기쁨」을 통해 “가정은 가정 공동체 생활에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물리적 환경 안에서, 가족 수에 맞추어 품위 있게 사는 데에 적합한 주택을 공급받을 권리를 지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가정과 주택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했다.(44항)

또한 사는 곳의 문제는 가난을 둘러싼 생태적인 관점도 상기시킨다. 영화 중에는 어린 다송(정현준분)의 ‘미국 직구 인디언 텐트’는 폭우 속에서도 비 한 방울 새지 않았지만, 같은 폭우에 기택의 집과 그 마을은 홍수로 잠기고 만다. 폭우 후 모든 것을 잃은 수재민들이 체육관에서 쪽잠을 자고 식판에 밥을 배급받던 날, 연교(조여정분)는 “비가 와서 미세먼지도 없다”며 가든파티를 연다.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소외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다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환경과 사회의 훼손은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며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모두에 귀를 기울일 것”을 강조했다.(49항)

반지하의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는 기택. CJ ENM 제공

■ 가난한 이라는 ‘기생충’, 그리고 ‘냄새’

교황은 2019년 제3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를 통해 “가난한 이들은 흔히 사회의 기생충으로 낙인찍혀, 그들의 가난조차 용서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이 쓰레기 취급을 받는 치욕에 공모한 이들은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난한다.(2항)

영화에 등장하는 기택(송강호분)의 가족들은 능력이나 노력이 없어 가난한 것이 아니다. 기택은 자영업에서부터 대리운전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노력해왔고, 아내 충숙(장혜진분)은 해머던지기 은메달리스트였다. 그 자녀들인 기우(최우식분)도 명문대생의 영어 과외를 대신할 만큼의 실력이 있고, 기정(박소담분) 역시 뛰어난 디자인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교황이 말한 “가난한 이들의 쓰레기 취급”은 영화에서 ‘냄새’라는 단어로 대변된다. 기택은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자조적인 대사를 읊는다. 반면 박 사장(이선균분)은 이 ‘냄새’가 “선을 넘는다”면서 노골적인 불쾌함을 드러낸다.

교황은 권고 「복음의 기쁨」을 통해 “배척되고 소외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일자리도, 희망도, 현실을 벗어날 방법도 없다”며 “인간을 사용하다가 그냥 버리는 소모품처럼 여기는” 풍조를 지탄한다. 교황은 배척된 이들이 “더 이상 사회의 최하층이나 주변인이나 힘없는 이들이 아니라 사회밖에 있는 사람들”이 됐음을 지적하며 가난한 이를 배척하는 실태를 비난했다.(53항)

반지하 집에서 무료 와이파이 신호를 찾고 있는 기우와 기정. CJ ENM 제공

‘선을 넘는 것’을 불쾌해하는 박 사장. CJ ENM 제공

■ ‘기생충’의 양극화를 뛰어넘는 길, 공동선

영화 속 장면 장면에는 기택의 가족 외에도 수재민, 일용직 노동자 등 가난한 이들로 대변되는 단역들이 스쳐지나간다. 가난한 이의 문제는 기택의 가족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구조적인 문제다.

교황은 “가난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은 절실하다”며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은 모든 경제 정책에 반영돼야 하는 관심사”(「복음의 기쁨」 202~203항)라고 말한다.

또 교황은 “부유한 세상과 활기 넘치는 경제는 가난을 종식 시킬 수 있고 또 끝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교황은 지난 2월 5일 교황청 사회학술원이 개최한 국제경제정상회의에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50명만으로도 세계의 모든 가난한 어린이를 지원할 수 있다”며 “무관심의 세계화가 죄의 구조를 불러왔다”고 말하면서 정제계의 지도자들이 ‘죄의 구조’를 변화시키는데 앞장서 줄 것을 요청했다.

동시에 교황은 양극화를 뛰어넘는 일은 정치인이나 경제인들만의 일이 아님도 강조한다. 특히 교황은 “‘가장 작은 이들을 위한 선택, 사회가 저버린 이들을 위한 선택’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부름 받은 우선적 선택”이라고 말한다.(「복음의 기쁨」 195항)

그러나 영화 속에서 선량해 보이는 부자들과 범죄를 저지르는 기택의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난한 이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는 교황의 말이 이상향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교황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가난과 궁핍이 구원의 힘을 지닐 수 있다는 생각은 비논리적으로 보인다”면서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1코린 1,28-29)는 말씀을 묵상한다. 교황은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의 심장에는 그러한 구원의 힘이 약동하고 있다”며 “이 구원의 힘은 모두가 회개를 향한 참된 순례에 동참해 가난한 이를 알아보고 그들을 사랑하게 해 준다”고 가르친다.(2019년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9항)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