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8) 우리에겐 또 한 분의 성모 ‘아기 같은 우리 엄마’

이성애 (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
입력일 2020-02-18 수정일 2020-02-18 발행일 2020-02-23 제 3183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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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의 영혼에 밥이 되는 엄마의 기도
자식들에게 해줄 것 없다고 안타까워하시는 엄마가 우리를 위해 해주는
기도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전하고 싶어
“나중에 전화드려 꼭 기도했는지물어볼거예요” 으름장까지 놓는다
“기도해달라는 자식들이 많아서 테레비 볼 시간도 없다! 맞제! 사랑아~~” 하며 웃으신다

지난해 추석 연휴에 89세의 나이로 친정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친정어머니(엄마)께서는 낮엔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밤엔 우리 4남매 중 3남매와 번갈아 가면서 함께 주무신다.

87세로 연로하시고 경증 치매가 있으시긴 하지만, 특별히 편찮으신 곳은 없으신 엄마를 보면서 얼마나 하루하루가 감사한지…. 매 순간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62년을 함께 하셨던 아버지의 부재로 식사량과 간식양이 줄긴 하셨지만, 시간을 버텨내고 계신 엄마에게 수녀인 내 동생이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대만으로 가기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매일 묵주기도와 연도를 바친다면 아버지께서 하루빨리 천국에 가시지 않겠느냐”고 했다. “아버지께서 복된 죽음을 위해 매일 기도하셨듯이 이젠 엄마도 죽음을 위한 기도와 아버지를 위한 기도를 하면서 성모님께 남은 시간을 봉헌하자”고 청했다.

엄마는 그 이후로 묵주기도와 연도를 꾸준히 바치신다. 내가 취침 당번인 이튿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엄마 방에 인사를 하러 들어가면 엄마께서는 그때마다 큰 언니가 직접 만들어준 5단 묵주를 두 손 고이 잡고 환자용 침대에 앉아 고개 숙여 묵주기도를 바치고 계신다. 그 모습이 얼마나 신비롭고 감동인지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치매로 방금 대답한 것도 잘 기억하지 못하셔서 똑같은 질문을 수십 번이나 하시는 엄마이기에 동생 수녀가 이야기한 기도를 잊지 않고 매일 기도하시는 것은 기적과도 같다. 고개 숙여 묵주기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 성모님께서 우리 엄마의 어깨에 손 올리고 계심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게 된다.

살아생전 엄마의 속을 무던히도 썩였던 아버지가 밉지도 않으신지 저렇게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를 드리고 계시는 엄마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 엄마가 또 한 분의 성모님이시고 저분의 딸로서 부끄럽지 않은 꾸르실리스따가 되어야겠구나’하는 다짐을 눈물로 하게 된다.

기도가 끝나고 성호를 긋고 나서 엄마는 아기 같은 목소리로 반려견 사랑이를 끌어안으며 “기도 끄읕~~”하며 활짝 웃으신다.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환하게 웃으며 “엄마, 아버지랑 수녀님을 위한 기도만 하지 말고 나랑 사위 기도도 해줘. 알았지?”라고 괜스레 큰 소리로 투정을 부려본다. 이렇게라도 우리들 곁에 계셔야 하심을.

육체의 나이가 드셔서 우리에게 해줄 것 없다고 안타까워하시는 엄마가, 자식들을 위해 해주는 기도의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전하고 싶었기에 “나중에 엄마께 전화 드려 꼭 내 기도했는지 물어볼 것”이라며 으름장까지 놓는다. 엄마는 그제야 “알았시오~~. 내만 보면 기도해달라는 자식들이 많아서 내가 ‘테레비’ 볼 시간도 없다! 맞제! 사랑아~~.” 하며 웃으신다. “엄마. 오늘 경남 양산에서 꾸르실료 425차가 시작되는 날이라 가서 미사 참례하고 기도하고 올 테니 엄마도 안 넘어지게 조심하면서, 밥도 많이 드시고 계셔요”하며 엄마의 침대 옆에 있는 성수 병을 든다. 엄마랑 헤어질 때면 방에 성수를 꼭 뿌려드린다. 그러면 엄마는 흐트러진 자세를 경건한 자세로 바꾸어 앉으시고는 성수 묻은 손으로 성호를 그으신다. 빛이 환한 모습으로, 난 그 모습이 참 좋다.

“주님. 오늘 하루도 주님께 저희 엄마 배덕연 마리아와 사랑이를 의탁합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평화로운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소서. 아멘.”

꾸르실료를 수료하고 나에게 변화된 모습을 찾는다면 성수를 가까이하고 집을 나서기 전과 집에 들어와서 첫 번째로 하게 되는 것이 십자고상과 성모상을 향해 오늘 하루를 주심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숙연하게 경배드리는 것이다. 온 마음을 다 바쳐….

나와 관련된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 안에서 이루어짐을 꾸르실료를 수료하면서 느낀 것이기에 얼마나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소중한지 모른다.

헤어지는 엄마에게 “엄마랑 나랑 오늘도 ‘감사합니다’ 하고 지내자. 기억해”하면 엄마께서는 “내 이름이 감사다!”하고 대답하신다. 그 대답에 둘 다 한바탕 크게 웃고 나는 집을 나선다. 이렇듯 참 소중한 오늘이란 선물을 주신 주님, 감사와 찬미·영광·흠숭을 주님의 소화데레사가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이성애 (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