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23) 수녀님과 핸드폰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0-02-18 수정일 2020-02-18 발행일 2020-02-23 제 3183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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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30년 넘게 알고 지내는 어느 수녀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습니다. 사실 안부 전화를 드렸다기 보다는 그 수녀회에서 인사이동이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수녀님께선 어느 소임지로 발령 받으셨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녀님께서는 예전부터 나에게 당신이 계신 곳에 한 번 찾아오라 말씀하셨는데, 결국 찾아뵙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있었고! 수녀님께 죄송함이 들 때마다 ‘할 일이 왜 이리 많은지…’ 하며 핑계 아닌 핑계를 댔기에!

“여보세요, 수녀님?”

“아, 네. 여보세요. 누구세요?”

“수녀님, 저예요, 저.”

“네? 누구신데요?”

“요셉이요. 요셉이.”

“요셉이가 누구?”

“아니, 수녀님, 강.석.진. 석진이, 요셉이.”0

그제서야 수녀님께선 내 목소리를 알아들으신 하였습니다.

“아, 우리 요셉이 신부로구나. 그래, 바쁠 텐데 어인 일로 전화를 다 주셨어?”

“아니, 수녀님께선 잘 지내시나 궁금하고요. 혹시 이번 수녀회 인사이동 때 어디로 발령을 받으셨는지 알고 싶어 전화를 드렸어요.”

“하하. 우리 요셉이 신부가 안부 전화도 다 하고. 그래, 그래 나는 00본당으로 발령을 받아서 다음 주에 가게 될 거야. 신부님은 잘 지내지? 건강은 괜찮고?”

“예, 수녀님. 잘 지내고 있어요. 새로 가게 되는 소임지에는 꼭 찾아가 뵐게요.”

“그래, 그래. 한 번 와. 그런데, 본당 일로 늘 바쁜데 올 수 있기나 해? 지난번에도 온다고 해 놓고 안 왔잖아. 그래도 나는 기다릴 테니 꼭 한 번 와. 맛있는 된장국 끓여줄게.”

“감사해요, 수녀님. 그런데 수녀님, 혹시 핸드폰에 제 전화번호는 입력하지 않으셨어요?”

“응, 나는 핸드폰에 전화 번호 입력한 건 없어. 그런데 왜?”

“그러면 걸려 오는 전화는 무조건 다 받으시는 거예요?”

“받을 수 있으면 받아. 그리고 내 전화가 아니면 끊고. 가끔 이상한 전화가 걸려 오기는 해. 사람인지 기계 소리인지는 몰라도. 암튼 나랑 통화하면 그들이 알아서 끊어. 그리고 주변 사람들 대부분 내 핸드폰 번호는 몰라. 늘 본당에서 지내는데, 뭐.”

“그래도 수녀님, 가까운 지인 분들의 전화번호는 핸드폰에 이름을 입력을 해 놓으세요. 만약에 스팸 전화가 걸려 오거나, 혹은 수녀님께 돈을 달라고 하는 사기 전화, 그거 있잖아요, 보이스 피싱. 뭐 그런 전화가 오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에이, 스팸 전화, 보이스 피싱, 뭐 그런 거 나는 잘 몰라. 뭐, 전화 오면 받고, 업무 일 있으면 이야기를 하고, 그러다 잘못 걸려온 전화 같으면 끊고. 그리고 돈 달라는 사기 전화, 에이 수녀가 무슨 돈이 있다고. 나는 그 사람들에게 줄 돈이 없어서 그런 건 걱정 안 해!”

“수녀님, 지금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데 그러셔요?”

“세상이 무섭기는 뭐가 무섭냐. 그냥 수도자로 살면 되지. 그리고 내 호주머니에 돈이 있을 때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주면 되고, 없으면 못 주는 거고. 그리고 돈을 못 드릴 땐 기도해 주면 되고.”

전화를 하는 동안, 계속되는 나의 잔소리에 수녀님께선 못 이긴 척, 내 핸드폰 번호는 꼭 입력하겠다고 다짐하셨습니다. 나 또한 조만간에 수녀님을 뵈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전화번호는 입력 했는지 확인하러! 그 날, 수녀님과 통화를 하는 내내, 왜 그런지 모르지만, 나의 머리가 아주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수녀님의 속삭이는 듯한 삶의 목소리가 며칠 동안 내 마음 속에 큰 울림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