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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선물 / 김우정 신부

김우정 신부,(제1대리구 병점본당 주임)
입력일 2020-02-18 수정일 2020-02-18 발행일 2020-02-23 제 318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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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 때가 있다. 좋은 일 한다고, 남 돕는 일 한다고, 봉사한다고 열심히 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질책과 뒷담화 한 수레일 때도 있고, 심지어 여기에 얼토당토않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급 시나리오까지 겹쳐 오해와 상처의 소용돌이에서 신음하게 되는 경우도 생겨난다.

그럴 때 참 힘들다. 내가 지금까지 뭘 해왔나 싶기도 하고, 온갖 복잡한 감정에 휘둘려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그런 경우를 잘 표현한 말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꼴을 당하나’라는 말이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그것은 목에 쓴 칼이 되고 발목에 채워진 족쇄가 되어 내내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다.

많은 사람이 이 처참한 결과론에 휩싸여 사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런 처참한 결과론에 휘말리지 않은 듯 별 일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심지어 질투하기도 한다.

그런데 또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사람도 생각 외로 녹록지 않은 삶을 사는 중이다. 사연 없는 삶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런데 그 삶을 대하는 방식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단 하나의 차이를 말하자면 우리가 만난 것을 결과로 여기느냐, 과정으로 여기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난관들을 결과로 여기기 시작하면 사람은 끝없이 자신을 추궁하게 된다. 그리고 풀리지 않는 답을 구하느라 많은 것을 낭비하기 시작한다. 낭비란 언제나 사람을 죄책감에 빠지게 만들고 지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 된다.

반대로 난관들을 과정으로 보기 시작할 때, 우리는 거기에 대한 집착과 추궁을 넘어서 그것을 견뎌낼 힘을 얻기 시작한다. 과정은 언젠가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가 힘들어도 그것이 과정이라는 것을 아는 한,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신 분이 바로 주님이셨다.

그분이 진 십자가는 결과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잘 안다. 그것은 모략과 중상과 비난이 일구어낸 결과가 아니라 부활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모든 이들이 십자가를 결과로 바라볼 때, 그분 홀로 그것을 과정으로 생각하시지 않았는가.

지금 우리가 지고 있는 십자가는 우리를 넘어뜨리고 피 흘리고 지치게 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부활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주님과 같은 선물을 얻을 것이며, 부활하신 주님처럼 우리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비할 바 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김우정 신부,(제1대리구 병점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