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대모님! 나의 대모님! / 손유미

손유미 (율리안나ㆍ제1대리구 권선동본당),
입력일 2020-02-11 수정일 2020-02-11 발행일 2020-02-16 제 318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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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문간을 들어오면서 상자 하나를 들고 온다.

“엄마, 대모님 선물!”

열어보니 손수 뜬 털실 목도리, 덧버선, 수세미 다발, 팔목 묵주, 탁상용 말씀달력이 카드와 함께 담겨 있다.

대모님과의 인연은 25년 전 전주에서 받은 견진성사로 시작됐다. 서로가 타지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던 때였다. 대모님은 이미 반장, 레지오 단장으로 봉사중이셨고 나는 여섯 살인 딸과 한 살 된 아들을 키우며 고군분투하던 시기였다.

모태 신자인 대모님은 아시는 것도 풍부했지만, 정이 깊으신 분이셨다. 수두룩 많은 대녀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이웃의 어려운 처지를 지나치지 못하셨다. 멀리 계신 친정엄마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되어갔다. 아기를 유치원에 맡길 즈음에 대모님을 따라 레지오 회합에 다녔다. 그리고 대모님이 이끄는 대로 한 걸음씩 신앙생활을 배워나갔다.

어느 날이었다. 레지오 활동으로 연도를 바치러 가자 할 때마다 상갓집에 가는 것이 왠지 무섭고 꺼려져 핑계를 대고 도망치곤 하던 때였다. 그런데 그날은 “연로한 부모님이 양쪽에 계시는데 연도도 바칠 줄 모르면 어쩌느냐?”하시며 나를 막무가내 끌고 가셨다. 낮은 지붕의 허름한 방에서 연도를 하는데 얼마나 구슬프고 아름답던지, 평화가 강물처럼 밀려왔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연도 책을 펴놓고 묵상하며 읽었다.

그리고 두어 달쯤 지나서 시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장례 기간 동안 연도합창에 맞춰 기도해드릴 수 있었다.

이런 날도 있었다. ‘아이들이 TV의 무서운 장면을 보고는 화장실도 혼자 못 가고 졸졸졸 따라다녀 힘들다’고 했더니 대모님이 성수를 가지고 와서 집 안 구석구석 뿌리면서 기도하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상시처럼 생활하였다.

생각해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수원으로 이사와 집안에 어려운 일이 닥쳐 대모님께 기도를 부탁했더니 ‘익산 봉쇄 글라라 수도원에 가야겠다’하시며 편지를 쓰라 하셨다. 세 번째 편지를 썼을 때는 대모님과 함께 직접 수도원을 찾아가 새벽 미사를 봉헌했다. 나무 의자 몇 개 안 되는 작은 방에서 수녀님들의 천진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강론을 듣고, 고해소 안의 작은 문 같은 쪽문이 열리며 성체를 모셨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하느님이 내게 신앙생활의 성장을 위해 주신 큰 선물이라면 대모님이시다. 당신은 넉넉지 않으셔도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에 차도록 주셔야 성에 차는 대모님. 진심으로 열과 성의를 다하시는 대모님. 이 시간 종합선물세트 상자보다 더 귀한 마음을 받으며 대모님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손유미 (율리안나ㆍ제1대리구 권선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