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옥과 고딕 양식 조화 이룬 독특한 성당 김대건 신부 서품 받은 뒤 고국 돌아와 첫 발 딛은 곳 100여 년 전 중국서 제작한 제대·촛대 등 고스란히 간직 ‘역사관’으로 꾸민 옛 사제관, 각종 유물 1000여 점 전시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금강(錦江)변을 따라 빼곡히 들어선 비닐하우스와 전형적인 농촌 마을 사이로 붉은 벽돌의 성당이 눈에 띈다. 예로부터 납작한 바위가 많이 널려있다고 해 ‘나바위’라 불린 이곳은 한국교회 역사상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닌 역사적인 장소다.
‘나바위’는 열다섯 나이에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조선 헌종 11년(1845년) 8월 17일 중국 김가항(金家港)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와 첫 발을 내딛은 곳이다. 그해 8월 31일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와 그의 서품식을 주례한 페레올 주교(제3대 조선교구장), 성 다블뤼 주교(제5대 조선교구장)와 선원을 포함한 14명은 라파엘호를 타고 중국 상하이를 출발해 인천 제물포항으로 향했다. 큰 태풍을 여러 번 만나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긴 일행은 10월 12일 밤 8시 오늘날의 강경인 황산포 인근 화산 언저리에 다다라서야 42일간의 기나긴 항해를 마칠 수 있었다.성당에는 제대 3개가 벽을 향해 서있다. 성당 건립 당시 중국 남경 라자로수도원에서 만들어 옮겨왔다. 오른쪽 제대에는 성 김대건 신부와 성 다블뤼 주교의 유해 일부가 안치돼 있다.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페레올 주교와 성 다블뤼 주교, 성 현석문 가롤로, 성 최형 베드로의 영정사진도 모셔져 있다. 이밖에 예수님 성상과 촛대, 세례대, 십자가의 길 14처 등 여러 성물도 100여 년 전 제대와 함께 중국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성당 뒤론 나지막한 산이 있다. 바로 ‘화산’(華山)이다. 1650년경 우암 송시열 선생이 ‘산은 작지만 매우 아름답다’하여 빛날 ‘화’(華)와 뫼 ‘산’(山)을 써 이름 지었다. 나바위성당도 화산성당, 화산천주교회로 불리다 1989년 마을이름 따 ‘나바위성당’으로 개칭했다.
박원희 기자 petersc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