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성모당의 햇볕 속에서 / 전동균

전동균(디에고) 시인
입력일 2020-02-04 수정일 2020-02-04 발행일 2020-02-09 제 3181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얼마 전에 대구 성모당에 다녀왔다. 성모당에 가게 된 것은 갑작스런 일이었다. 부산의 학교에 다녀오는 중에 시간이 나서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대구 청라언덕과 계산성당을 들르게 되었는데, 계산성당을 나서면서 불현듯 성모당이 떠올랐던 것이다. 성모당은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곳이지만, 나에게는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님이 새벽마다 아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던 ‘간절하고 소박한 모성의 공간’으로 각인되어 있다.

성당 관리인에게 길을 물었더니 십 분쯤 걸어가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처음 가는 길인 데다 길눈이 어두워 중간에 엉뚱한 길로 잠시 빠지기도 했지만, 인쇄 골목 언덕을 올라서니 도심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에워쌌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의 정결한 담을 따라 조금 걷자 어느 순간, 왼쪽에 성모당이 나타났다.

겨울날 평일 오후, 중장년의 신자들이 성모굴 앞에서 고개 숙여 기도를 드리고 있었고 어떤 분은 휠체어에 의지한 불편한 몸으로 묵주를 굴리고 있었다. 또 어떤 분들은 기도를 끝낸 후 조용한 걸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나도 고개 숙여 마음속에 소망하는 짧은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겨울임에도 따사로운 햇볕 속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성당과 신학교, 사제관 건립을 희망했던 드망주 주교의 청을 들어주셨던 성모님이 내 소망을 들어주실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건 아무래도 괜찮을 듯싶었다.

바닥엔 성모 마리아를 향해 기도하는 여인이 있고, 그 위엔 두 손 모은 성모상이 있는 성모굴의 풍경은 마치 하나의 상징 같았다. 기도, 당신을 향한 기도 그 자체로 이미 우리는 위안과 평화를 얻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런 청안한 공간이 도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게 하나의 축복이라는 생각도.

신학대학 교정과 성직자 묘지를 다녀온 후 다시 성모당에 들렀다. 쉬 떠나기가 아쉬웠던 탓이었다. 조금 전 성직자 묘지에서 봤던 청바지 차림의 머리 희끗한 한 남자는 어느새 성모당 마당에 공손히 서 있었다. 또 어떤 여자는 어떤 희원이 가슴 속에 소용돌이치고 있는지 성모굴 바로 앞에 무릎 꿇고 하염없이 머리 숙여 기도드리고 있었다.

그 겸허하고 간절한 모습을 보면서 기도는 단순한 청원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대화라는 마더 데레사의 말이 떠올랐다. 나의 기도는 늘 일방적인 청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은, 내가 모시고 있는 나의 하느님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과연 진정 하느님을 모시고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전개되면서 나는 문득 심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성모당 동굴 윗면에는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라는 글씨가 씌어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바친 서원에서’라는 뜻이라 한다. 그러니까 이 성모당은 드망주 주교가 성모님과의 약속을 지킨 증표인 것이다. 늘 투정 섞인 일방통행의 내 기도를 고개 끄덕이며 들어주시는 당신께 나도 무언가 약속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약속은 물론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나는 모처럼 환한 이 겨울 햇볕을 마음껏 누리자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성모당의 이 햇볕 또한 당신께서 이 세상에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의 증표일 것이기에.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동균(디에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