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 / 김형태

김형태(요한) 변호사
입력일 2020-02-04 수정일 2020-02-04 발행일 2020-02-09 제 3181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몇 년 전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법의 허점을 교묘히 비집고 다니는 악인들을 용감한 형사가 철저히 응징합니다. 악인들이 높은 자리에서 승승장구하고, 잘 먹고 잘 사는 현실에 절망하던 사람들은 그 영화를 보고 다들 후련해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는 않습니다. 선과 악이 그리 쉽게 갈리지 않는 경우도 많고, 영화 속 형사처럼 정의를 실현한다면서 법 절차를 무시하거나 남용하거나 폭력을 쓰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또 다른 악을 낳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선악이 그리 쉽게 갈리던가요. 지금도 서초동 법원이나 과천 서울구치소 앞에 가면 박근혜 대통령이 억울하게 갇혀 있으니 빨리 석방하라는 현수막들이 길 한편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이미 죄인이라고 선언했건만 저 분들은 그 판단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재판관들이 역사의 죄인이라고 몰아붙입니다.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일제가 위안부나 노동자를 강제 징용한 사실이 절대로 없다면서 우리가 터무니없이 억지를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십자군 전쟁에서 그리스도인과 무슬림들은 각자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저 악인들을 멸망시켜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을 겁니다. 2차 대전 때 포탄이 빗발치듯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참호 속에서 영국과 독일 군인들은 같은 하느님을 향해 서로 적을 무찌르게 해 달라 빌었겠지요.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일까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는 게 불가능한 것이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한 가족이라도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식이 서로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달라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러니 남들과는 더 말해 무얼 할 것입니까. 성별, 계급, 지역, 정치 성향, 종교, 국적이 다르니 이 세상은 늘 다툼의 연속입니다. 모두 서로 다르고 그래서 서로 다투는 건 우리 개체들의 숙명입니다.

그래도 역사 이래 종교의 여러 스승들을 통해 이 개체의 한계와 숙명을 초월하는 통찰을 얻었고, 개체들 사이 다툼의 고통을 가능하면 줄여 보려는 제도적 노력을 이어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은 개개인들의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려는 제도적 노력의 결실입니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고 선언합니다. 아니 그저 원론적 의미의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국가가 반드시 따라야 할 최고 규범입니다. ‘저마다 생각과 이해관계가 다를지라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모두가 존엄하고 가치를 지닌다.’ 정말로 엄청난 선언이지요. ‘공공의 적’에 나오는 악인은 돈 때문에 어머니까지 죽이지만 이 헌법 선언에 따르면 그 사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답니다. ‘하느님 까불지 말라’고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저 한기총 대표 목사도, 죽을 때까지 전향을 거부한 골수 빨갱이도, 무슬림도 불교 신자도 그리스도교 신자도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도, 갑질을 해대는 재벌 가족도 다 존엄하답니다.

사실 헌법 제10조의 ‘모든 국민’은 ‘모든 사람’으로 고쳐야 하고 이 조문 내용은 헌법 제1조로 규정돼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선언보다 더 상위 개념이니까요.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 이것이 우리 개체들의 숙명인 다툼을 줄이는 기본 출발점입니다. 헌법은 ‘모든 사람은 존엄하다’는 이 선언을 구체화하는 하위 규범으로서 ‘민주공화국’, ‘기본권 보장’, ‘권력 분립’, ‘사회적 시장경제’ 같은 제도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나라의 기본 원리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헌법 원리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악인이고 잘못된 거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다툼의 숙명을 지닌 이 개체의 한계를 초월하는 길을 여러 스승님들께서 밝히 보여 주셨지요. 개체 ‘나’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다른 ‘나’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자비를 베푸는 일. 이 모든 개체들은 전체이신 당신의 다 같은 자녀이니까요.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형태(요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