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르멜 수도자들에게 듣는 ‘축성 생활’

우세민 기자
입력일 2020-01-28 수정일 2020-01-29 발행일 2020-02-02 제 3180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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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 하느님께 내어 맡기면 살아갈 힘 얻을 수 있어
아침·저녁 매일 2시간씩 관상기도
자신 살피고 주님 뜻 헤아리는 시간
‘노동’ 겸하면서 내외적 균형 맞춰

1월 20일 가르멜 수도회 마산수도원 수도자들이 관상기도를 바치고 있다.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에 지쳐간다. 일도 잘 하고 싶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생활도 잘 하고 싶은데, 여건은 그렇지 못하다. 아마도 현대 그리스도인의 대부분이 겪는 고민 아닐까. 바쁜 일상 안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다. 조금은 멀어진 듯한 하느님과 다시 가까워지고 싶다.

수도자들이 떠올랐다. 다른 신자들과는 달리 모든 삶을 오롯이 주님께 봉헌한 이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혹시 내 안의 영적갈증에 대한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민 해결을 위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가르멜 수도회 마산수도원을 찾았다.

■ 기도가 중심인 삶

오전 6시, 성당에 갈색 수도복을 입은 수사들이 앉아 있다. 삼종기도와 성무일도를 바치며 하루를 연다.

“내 영혼이 당신께 의지하올 때, 이 몸을 바른손으로 붙들어 주시나이다.”

성무일도가 끝나자 불이 꺼진다. 어둡고 고요한 성당, 감실과 십자가의 작은 조명 아래 수사들은 주님과 좀 더 긴밀하게 만난다.

가르멜 수도자들의 삶은 기도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바치는 성무일도와 미사 이외에도 가르멜 수도자들은 아침과 저녁 1시간씩, 매일 2시간 관상기도를 바친다.

기도만 하지는 않는다. 가르멜 수도자들에게 끊임없는 기도가 첫째 의무이지만, 남녀 수도자 공통적으로 노동을 겸하면서 내·외적 균형을 이룬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남자 수도자들은 세상에 나가 피정 지도와 고해성사, 영성 강의 등의 사도직 활동을 한다. 여자 수도자들은 봉쇄의 삶을 선택해 오롯이 기도로써 봉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 기도가 해답일까?

문득 의문이 든다. 아무리 노동과 사도직 활동을 겸한다지만, 마냥 기도하는 삶이 답답하지는 않을까. 모든 것을 오롯이 주님께 봉헌하는 수도자들의 생활이 평신도들에게 어떤 해답을 줄 수 있을까?

마산수도원 원장 김영문(브루노) 신부는 관상기도에 대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또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그분 뜻을 살피고 머무르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바쁘게 일하고 활동하면서 성취를 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세상에서 본다면 가르멜과 같은 수도생활은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가르멜의 영성은 그런 느림과 여유로움 속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분의 사랑을 배우고 깨닫는 시간에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경수(가밀로) 신부는 가르멜 수도자가 기도하는 주된 목적이 ‘영혼 구원’이라고 말한다.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기도로 동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도는 무척 강력한 영적 싸움입니다. 개혁 가르멜의 창설자이신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께서도 ‘기도하는 삶이 활동보다도 더 치열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기도 안에서 우리 수도자들의 성화는 물론이고 모든 이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교회의 일부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영적인 중심 필요

그러나 점차 분주해지는 세상에서 영성을 추구하는 삶이 설득력 있게 보여질까? 여타의 철학과 이념, 종교들이 혼재된 현대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이른바 ‘카페테리아 가톨리시즘’(Cafeteria Catholicism)을 당연한 듯 여긴다. ‘카페테리아 가톨리시즘’은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자기 신념을 중시하고, 교회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취사선택하는 현상을 뜻한다.

전주원(하상바오로) 신부는 ‘카페테리아 가톨리시즘’ 현상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일말의 흔들림 없이 올곧고 단단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영적인 중심이 필요하다고 전 신부는 강조한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생각이나 선택에 있어 많이 감각적이고 얕은 것 같아 안타까워요. 중요한 문제를 앞두고도 세상의 흐름 안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중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럴수록 하느님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기도 할 것을 추천합니다. 내면 깊은 곳의 부르심, 그리고 그것을 통한 여정들. 이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소명들이라고 봐요.”

최동현(마리프란치스코) 수사는 영적인 중심을 찾고 살아간다면 성소자 감소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가르멜 수도회를 접했습니다. 한창 학교생활로 힘들었는데, 이곳에서 기도하면서 많은 위안을 얻게 됐어요. 고요한 가운데 느림의 미학을 느끼면서 엄마 품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봉헌생활의 기쁨을 더 많은 젊은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관상기도를 바치는 수도자들의 더 없이 평온한 모습에서 주님 안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 새삼 깨닫는다. 하느님과의 깊은 관계 안에 머문다면 지친 삶 안에서도 여유롭게 올바른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가르멜 수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원장 김영문 신부는 세상의 중심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이 수도원을 자주 찾으면서 봉헌된 삶을 살아가는 수도자들로부터 영적인 힘을 얻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고요함과 침묵, 전례의 거룩함 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여러 가지 문제들, 부족했던 신앙 모두 내려놓고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맡기십시오. 세상으로 돌아가서도 새로운 마음과 결심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피정 문의 055-271-1708 가르멜 수도회 마산수도원

◆ 가르멜 수도회는

엘리야 예언자의 정신을 따라 이스라엘의 가르멜산 주변으로 생활을 하던 은수자들로부터 태동됐다.

무슬림들의 팔레스타인 점령으로 1230년대 유럽으로 수도회가 이주하게 됐다. 이후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와 십자가의 요한 성인을 통해 개혁 가르멜 수도회가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개혁 가르멜 수도회는 전 세계 126개국에 850여 개의 남녀 가르멜 수도원이 있다. 한국에는 1974년 서울에서 남자 수도원 창립미사가 봉헌됐다. 남자는 서울·인천·마산·광주·성주와 미국 LA에 수도원이 있다. 여자는 서울·천진암·충주·대전·대구·상주·밀양·고성과 캄보디아에 수녀원이 있다.

가르멜 수도회 마산수도원 전경.

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