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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다시 시작해보기 / 박천조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0-01-28 수정일 2020-01-28 발행일 2020-02-02 제 318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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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돼 갑니다. 남북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한 달이 매우 마음 졸였던 기간인데 생각과 달리 조용하게 지나 왔습니다.

2019년이 저물어 가면서 사실 여러 우려가 있었습니다. 북미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유엔제재 제2397호의 결의에 따라 해외로 송출됐던 북쪽의 노동력들이 모두 복귀해야 하는 시점(12월 22일)이 있었고, 북이 제시했던 협상시한(12월 31일)도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북쪽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진행했고 2020년 전망을 논의했습니다. 결론을 쉽게 정리하자면 ‘스스로 갈 길을 가겠다’는 문장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갈 길을 가고자 하는데’ 북쪽도 여러 고민이 있어 보입니다. 어렵게 끌어 왔던 이 판을 깨버리기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통상 있었던 신년사 대신 전원회의 결과 발표로 대체했습니다. 내용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형식에 있어 지도자 개인이 아니라 전 인민의 입장을 반영하는 모양새입니다.

물론 며칠 전에는 북쪽의 김계관 외무성 고문이 담화를 통해 남쪽은 북미 관계에 끼어들지 말라면서 불편한 기분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만을 표시하긴 했지만 협상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대외 발표 등에서 수위조절을 생각하고 있는 듯해 보입니다. 자주 우리가 실수하는 것들 중에 하나입니다만 북쪽의 발표에서 ‘행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독설과 같은 표현만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북쪽이 원하는 속내를 읽을 수 있습니다.

통상 북쪽 명절이 있는 2월 16일(광명성절) 전후까지 북쪽도 내부적으로 여러 준비를 합니다. 결정내용에 대해 각 기관과 단체가 사업공유도 하고 세부계획도 잡지요. 그러기에 상황을 경색시킬 수 있는 행동이 외부로 나타나기 어려운 시기입니다. 만일 북쪽을 설득하기 위한 메시지와 행동을 고민한다면 이 시기가 적절할 것 같습니다. 북쪽이 ‘스스로 갈 길을 가겠다’는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메시지와 행동에 조응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께서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남북이 할 수 있는 협력은 최대한 하겠다”며 의지를 밝힌 점은 시기적으로 의미 있어 보입니다. 다만 매년 3월경 진행되는 한미연합훈련이 북쪽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메시지 관리 차원에서 훈련의 수위를 조절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긴 합니다만 2월까지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실천방향을 적극 개진했으면 합니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이사야 40:31)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