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축성 생활의 날에 만난 사람] 중도 입국 청소년 교육 시설 ‘원곡다우리스쿨’ 김혜리 수녀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0-01-28 수정일 2020-01-28 발행일 2020-02-02 제 3180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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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에서 만나는 이들 도울 수 있어 행복합니다”
‘미래 사도직’ 직접 찾아보려 2018년 안산 지역서 활동 시작
다문화가정 아이들 돕기 위해 원불교서 공간 지원 받고 봉사

경기도 안산 단원구 원곡동 759번지에 자리한 원불교 안산교당 한 켠 컨테이너 건물에는 ‘원곡다우리스쿨’이라는 작은 팻말이 붙어있다. 김혜리(마리아혜리·노틀담수녀회) 수녀가 책임 교사로 운영하는 곳이다.

김 수녀는 매일 오후 이곳에 출근해 5명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돌본다. 필리핀 출신 2명(쌍둥이 자매)을 비롯한 베트남·조선족·캄보디아 출신 어린이들이다.

모두 친부는 한국인이어서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사망 등 여러 이유로 엄마의 나라에 보내져 자랐다. 한국에서 돈을 벌던 엄마가 아이들이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다시 데려온 경우다.

베트남에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교육을 받은 박진주(14)양은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상황임에도 한국 학제에 따라 6학년에 배정됐다. 지난해 12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진주양같은 중도입국 청소년들에게 김 수녀는 한국어 중에서도 듣기와 말하기에 중점을 두고 가르친다. 언어 학습의 기반을 생활 속에서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김혜리 수녀는 “수도자는 늘 수도자가 누구인지를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각각 소통 언어가 달라 짧은 시간에 보고 듣는 것이 아니면 정보 공유가 쉽지 않습니다. 은행, 도서관, 시장 등을 데리고 다니며 한글과 숫자를 접하게 하고 상황에 맞는 언행을 가르칩니다.”

육체적으로는 1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지만, 한국에 와서 언어를 비롯한 일상생활 태도를 배우는 것은 또 다른 태어남이다. 김 수녀는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말과 글을 익히고 달라지는 모습에서 인간에게 이런 지력을 주신 분이 누구이신가를 읽는다”며 자신은 “단지 그 조각들을 이어주는 사슬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가 이 지역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8년이다. 노틀담수녀회는 2016년 총회 성명서 ‘말씀과 만나며, 세상과 관계하기’에 따라 활동수도회에 맞갖은 시대의 요청과 연대하며 육화 영성을 살아낼 기회를 모색했다. 그런 배경에서 수도회는 학교사도직 경험이 있는 김 수녀를 안산으로 발령했다. 서원 은경축 쇄신 기간을 마친 후였다. 주 소임은 한국 최초의 다국적 외국인 밀집 지역이자 공단 밀집 지역인 안산에서 미래사도직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김 수녀는 파견 다음 날부터 거리로 나섰다. 그야말로 ‘길거리 사도직’이었다. 기관을 다니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외국인 노동자들과 결혼 이주여성들을 만났다. 새마을부녀회 고추장을 담그고, 마을 화초심기 등에 참여하며 사람들을 만나 정보를 찾았고 거리의 배너나 간판에서 다문화 관련 내용이 보이면 모두 방문했다. 교구 이주사목센터 산하기관 활동에도 참여했다.

지향을 두었던 다문화 청소년들과 만나기 위해 찾았던 타 수녀회 다문화센터에서 고학년이나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중도 입국 청소년 교육 여건이 어렵다는 얘기에 교육 지원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역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원불교에서 컨테이너 공간을 빌릴 수 있었다. 원곡다우리스쿨은 그렇게 탄생했다. 종교 간 연대의 자리이면서 길거리 사도직의 교육 공간이 확보된 것이다. ‘다우리’는 ‘모두 다 우리’라는 뜻과 외국인 지역인 원곡동 ‘다운 우리’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다민족을 아우른다’는 표현이다.

김혜리 수녀가 다우리스쿨에서 한 학생에게 컴퓨터를 이용해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 다우리스쿨은 길거리 사도직의 하나일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거리’에서 이뤄진다. 캄보디아 농업노동자 지원, 이주여성 노동자의 건강권 사업 지원, 예방 접종, 위생 교육 등 길에 나서 마주하는 모든 일들이 그에게는 사도직이다.

다우리스쿨 공간은 식수 시설이 없어 골목 안 마트 건물 수도를 이용할 만큼 환경적으로 열악하다. 각종 비품은 거의 얻어오거나 주워온 것이다. 그래도 김 수녀는 “지금껏 이렇게 신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리저리 봐도 세상과 겨룰 수 없는 내가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 역할을 맡으며 나눌 게 있으니까요.”

1989년 입회해 1993년에 첫 서원을 하고 30년 넘게 수도자로 살아온 그는 “가진 것이 없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않아도 영혼이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을 걷고 있다”며 “많은 모험과 시험 속에서도 바닥을 딛고 일어설 기회를 주신 하느님은 수도자인 내게 자존감 그 자체”라고 했다. ‘걸어서, 걸어서!’가 모토라는 김 수녀. 수도자란 “늘 수도자가 누구인지를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축성 생활의 날을 맞으며 「복음의 기쁨」 13항의 ‘신앙인은 근본적으로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구절을 되뇝니다. 이는 제 인생의 변곡점이며 길거리 사도직 실천의 모티브이기도 합니다.”

※문의 010-4168-2711 김혜리 수녀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