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책임지는 사람 / 김우정 신부

김우정 신부,(제1대리구 병점본당 주임)
입력일 2020-01-28 수정일 2020-01-28 발행일 2020-02-02 제 318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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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의 주임신부로 첫 임지를 배정받던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앞으로 내가 하는 여러 결정이 공동체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이었다.

본당 사제들의 주보성인인 프랑스 아르스의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은 자신의 부임지인 아르스 신자 수가 240명이라는 말을 듣고서 “주님, 너무 많습니다”하고 기도하셨다는데 내가 가는 곳은 그분이 사목하신 아르스의 몇 배나 되는 곳이었으니, 성인도 아닌 내가 그 많은 분을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무척 큰 두려움을 느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수많은 상황을 만나면서 조금씩 단련도 되어가고 여유도 생기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원숙해진 부분도 생기긴 했지만 지금도 그 책임감의 무게는 절대 가벼워지지 않음을 느끼며 산다.

한 사람의 본당신부가 보이는 모습이 교회의 현실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의 신앙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으며 넘어뜨리고 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맡겨진 직무가 권력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내어주는 봉사라는 것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사제에게 맡겨진 권한은 그것을 누리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교회와 사회 안에서 자주 발견되는 권력이 되어가는 봉사와 책임지지 않는 권한의 모습들을 자주 바라보고 지켜보면서 스스로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자주 되새긴다.

교회의 사제직은 하느님께서 맡기신 백성들을 책임지는 직무이지 대접받고 인정받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그것을 늘 상기하고 있지 않으면 자신에게 맡겨진 권한이 가져오는 권력에 취해 하느님께 겸손되이 자신의 자리를 내어드리지 않고 자신을 하느님으로 착각하는 일도 생기곤 한다.

주님께서는 마지막까지 당신의 백성을 위한 책임을 다하셨다.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고, 자신을 향한 박해의 고통과 슬픔 가운데서도 “저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모릅니다”하시며 숨이 다 하는 그 순간까지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그 모습에 십자가 옆에 서 있던 백인대장 또한 “저분은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셨구나”하고 읊조리지 않았는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신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납득해야 하는 것이다. 그 막중한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사제는 제단 앞에 엎드려 처음으로 자신을 봉헌하고,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을 따르며 책임을 다하고, 마지막에 하느님께 자신의 자리를 내어드리며 떠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우정 신부,(제1대리구 병점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