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세상 끝의 집- 카르투시오 봉쇄 수도원’ 다큐 제작한 KBS 김동일 PD

김현정 기자
입력일 2020-01-07 수정일 2020-01-09 발행일 2020-01-12 제 3178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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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삶의 방식으로 바라본 수도생활
카메라 들어가기 힘든 곳 찾아 이웃에 대한 공감의 장 마련
소년교도소·병원 이어 3번째
수도원 일상 그대로 담기 위해 해설 대신 헌장 자막으로 처리

한 해가 오고가는 시끌벅적함과 번잡함에 지쳐 있던 지난 연말, 우리들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다큐멘터리 연작이 방영됐다.

KBS 1TV ‘다큐 인사이트’의 성탄 특집 ‘세상 끝의 집-카르투시오 봉쇄 수도원’을 통해 아시아 유일의 카르투시오 수도원인 경북 상주 수도원의 모습이 공개된 것이다.

다큐를 연출한 김동일(48·사진) PD를 만나 다큐 제작의 뒷이야기를 들어 봤다.

“이번 다큐는 ‘세상 끝의 집’이라는 제목을 단 세 번째 작품입니다. 카메라가 들어가지 않은 곳을 간다는 것과 촬영 대상이 누가 됐든 결국 그들도 우리의 이웃이므로 그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장을 마련한다는 것이 ‘세상 끝의 집’의 원칙이죠.”

과거 ‘세상 끝의 집’은 김천소년교도소와 국립공주병원(조현병, 알코올중독 등 치료)을 카메라에 담았다.

“카르투시오 수도원 촬영이 성사될 가능성은 50%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어려울 것이라고 보았죠.”

이 다큐가 세상에 나오게 된 데에는 숨은 공로자들이 있다.

바로 주교회의 편집2부 배봉한(요한 세례자) 부장과 초대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다.

배 부장은 김 PD에게 카르투시오 수도원을 추천했고, 매달 카르투시오 수도원을 방문하는 두봉 주교는 수도원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했다.

두봉 주교는 김 PD에게 “너무 가톨릭적인 것에만 치중해 방송을 만들면 시청자들이 오히려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으니 객관성을 유지하라”는 조언도 함께 건넸다.

예비신자인 김 PD는 과거에도 수도원 촬영을 추진하다 막판에 무산된 적이 있는지라, 그저 하느님께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다면 기회를 주시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면 제 기도를 안 들어주셔도 됩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깁니다’.

카르투시오 수도원에서는 촬영 가부를 다수결로 결정했다. 찬성 8, 반대 3이었다. 프랑스 모원에서도 다시 찬반 투표를 거쳤다.

찬성으로 정해지자 그 때부터 진행은 급물살을 탔다.

수도원 측의 요구조건은 “우리를 기묘하고 음습하고 세상과 단절된 사람으로 그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평범한 사람으로 보여주라”는 것이었다.

촬영은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이뤄졌다. 촬영 기간 동안 한 번 촬영 때마다 보통 열흘 이상 수도원에 머물렀다. 김 PD는 수도원의 미사와 밤 기도, 저녁기도도 함께했다.

“카르투시오회의 생활 중 가장 어려운 점이 새벽 0시30분에 시작해 2시간 이상 이어지는 밤 기도 때문에 잠을 초저녁과 밤 기도 후로 두 번 나눠 자야 하는 것입니다. 힘들긴 했지만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침묵과 고독 속에 생활하는 봉쇄 수도원의 일상을 잘 그려내기 위해 해설과 내레이션 대신 카르투시오 헌장을 자막으로 처리했다.

“카르투시오 헌장은 수도생활에 대해 가장 객관적이면서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죠. 무엇보다도 내용이 좋고 문장이 아름다워요. 방송에 다 담지 못해 아깝습니다.”

또한 수도원의 생활을 보다 자연스럽게 보여주고자 개인 인터뷰는 하지 않고, 수도자들 간의 대화만을 촬영했다.

수도자들을 오랜 기간 가까이에서 지켜 본 김 PD는 그들에 대해 한 마디로 “선하신 분들”이라고 표현했다.

8개월에 걸친 다큐멘터리 촬영은 김 PD 개인의 삶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난과 겸손에 대해 늘 생각하려 합니다. 얼마 전에도 1박2일간 카르투시오 수도원에 다녀왔어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같은 자리를 지켜 주는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아 행복합니다.”

지난해 예비신자 교리를 듣던 중 수도원 촬영이 급하게 결정되면서 어쩔 수 없이 중도하차했다는 김 PD는 올해 세례를 받을 계획이다. 세례명도 벌써 정했다. 브루노. 카르투시오회를 창립한 성인의 이름이다.

다큐멘터리 ‘세상 끝의 집-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 의 한 장면.

◆ 카르투시오 수도회란?

1084년 성 브루노(1032?~1101)에 의해 설립된 수도회.

독일 쾰른(Köln)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브루노는 쾰른의 성 쿠니베르투스(Cunibertus) 학교를 거쳐 프랑스 랭스(Reims)의 주교좌성당 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055년경에 사제품을 받고 신학대학 교수로 활동했던 그는 1082년 2명의 동료와 함께 랭스를 떠나 은수자가 됐고, 1084년에 몇몇 동료와 함께 그르노블(Grenoble)로 이주해 적막한 알프스 샤르트뢰즈(Chartreuse) 계곡에 은수처를 마련했다. 그르노블의 주교이자 성 브루노의 제자인 성 후고는 그 곳의 성을 수도원 건물로 기증했다.

수도회 명칭은 ‘샤르트뢰즈’의 라틴어 표기인 ‘카르투시아’(Cartusia)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곳은 지금도 전 세계 카르투시오 수도원의 모원(母院)이며, 필립 그로닝 감독이 제작한 영화 ‘위대한 침묵’을 통해 생활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카르투시오회는 침묵과 고독 속에서 독거생활을 기본적인 생활양식으로 하는 수도회다.

이러한 삶의 목적은 개인의 은수처에서 기도, 학습, 단순노동 그리고 관상과 공동체 전례거행 등 영성 수행을 함으로써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데에 있다.

카르투시오회는 설립 이후 지금까지 다른 수도회에서 나타났던 시대적 변화에 따른 타협과 규율의 완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한국에는 1999년 진출했다.

총 3부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세상 끝의 집–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에는 프랑스, 스페인, 독일, 한국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11명 수도사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이 계절의 변화와 함께 담겨 있다. KBS 홈페이지(www.kbs.co.kr)에서 무료로 다시 볼 수 있다.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