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김치호·김정숙 시복 기원 묵주기도 70만 단 모은다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0-01-07 수정일 2020-01-07 발행일 2020-01-12 제 3178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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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파주 갈곡리본당, 10월까지 진행… 칠울공소 출신 사제·수녀 순교 70주년 맞아

김치호 베네딕토 신부(오른쪽)와 누나 김정숙 마리안나 수녀. 갈곡리본당 제공

의정부교구 파주 갈곡리본당(주임 김민철 신부)이 하느님의 종 김치호(베네딕토) 신부(1914~1950)와 김정숙(마리안나) 수녀(1903~1950)의 순교 70주년을 맞아 올해 10월까지 시복 기원 묵주기도 70만 단 바치기를 진행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김치호 신부, 김정숙 수녀 시복 기원 묵주기도에 2020년을 시작하며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칠울공소(현 갈곡리본당)의 구교우 가정에서 태어난 김치호 신부는 1926년 열두 살에 루드비히 피셔 수사의 제화공 도제로 서울 백동(현 혜화동)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에 입회했다. 1927년 12월 1일 성 베네딕도회 서울 수도원이 함경남도 덕원으로 완전히 이전한 다음, 그의 총명함과 원의가 고려돼 김 신부는 진로를 바꿔 신학교 준비반 과정을 시작했다. 이어 1942년 5월 1일 덕원 수도원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김 신부는 한국인 첫 수도 사제로서 유럽 신부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수도회를 개척하리라는 희망을 가졌고 독일 수도자들에게도 특별대우를 받았다. 김 신부는 라틴어뿐 아니라 독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해 독일인 수도자의 한국말 선생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45년 덕원본당 주임으로 사목한 김 신부는 1946년 1월 폐병으로 쓰러졌고 1949년 북한 공산당 정치보위부원들에 의해 평양 인민교화소로 압송됐다. 1950년 10월 5일 북한 인민군들이 평양 인민교화소를 비우고 북쪽으로 후퇴할 때, 김 신부는 폐병으로 각혈이 심한 상태에서 인민군들에 의해 결국 순교했다.

김치호 신부의 누나인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김정숙 수녀는 1950년 10월 15일 황해도 매화동본당 봉삼유치원에서 사목을 하던 중 인민군에게 처형됐고, 이틀 후인 10월 17일 순교했다.

갈곡리본당은 순교자 기념 순교사적지로 지정됐으며 미사 시작 전 신자들은 김치호 신부와 김정숙 수녀를 위한 묵주기도를, 미사 말미에는 하느님의 종들의 시복을 위해 매일 기도를 바치고 있다.

묵주기도 70만 단 바치기는 갈곡리본당 교우뿐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갈곡리성당’ 카카오톡 또는 페이스북에 이름과 세례명, 봉헌 단수를 적으면 된다.

※문의 010-7720-0748 갈곡리본당 최은순(아녜스) 순교자공경회장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