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흔적 / 박민규 기자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0-01-07 수정일 2020-01-07 발행일 2020-01-12 제 3178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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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김치를 꺼냈다. 두 달 전 하느님 곁으로 떠난 장모님이 담그신 김치다. 유난히 음식 솜씨가 좋았던 장모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녀들을 위해 김치를 담그셨다. 장모님이 남긴 마지막 김치를 먹으며 자녀들을 향한 애뜻한 마음도 함께 되새겼다.

인간의 사랑과 희생이 남긴 흔적은 큰 여운을 남기고 새로운 힘을 낼 수 있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하느님 사랑의 흔적은 어떨까.

주님 세례 축일을 맞아 세례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세례 때의 기억을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이런 망각의 상태를 뛰어넘어 무한한 사랑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라고 말한다. 머리와 가슴에 새겨진 흔적을 넘어 당신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인간의 인식을 넘어 활동 하시는 하느님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올해 천주교인권위원회 이돈명인권상을 수상한 성소수자 부모모임 홍정선(체칠리아) 대표는 동성애자인 아들의 상황을 처음 알았을 때 “모든 세상이 멈춘 것 같이 막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부모의 지지와 사랑이 필요함을 깨닫고 현재는 아들뿐 아니라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 투신하고 있다. 홍 대표는 “아들의 밝은 모습과 성소수자 부모들이 연대하며 치유되는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께서 분명 함께하신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들이 세상의 편견에 맞서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사랑과 연대의 흔적이며, 그 중심에 하느님의 이끄심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망각하고 있다고 여겼던 하느님 안에서 받은 새 생명은 이렇듯 서로를 위한 마음과 희생의 흔적들 안에서 이미 펼쳐지고 있지 않을까.

박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