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근본적 이유는 멀리 있지 않다 / 김우정 신부

김우정 신부,(제1대리구 병점본당 주임)
입력일 2020-01-07 수정일 2020-01-07 발행일 2020-01-12 제 317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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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의 신년 하례식 미사에서 교구장 주교님께서 성소의 부족에 대해 강조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그 말씀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하나의 대화가 있었다.

어느 교육에서 강의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수녀님 한 분을 근처 지하철역까지 모셔 드리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즈음에 수녀님께서는 나에게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성소 부족의 원인에 대한 견해를 물으셨다. 그래서 알고 있는 이런저런 원인의 분석을 나열해 드렸더니 잠시 침묵하신 그분께서는 나에게 다시금 질문하셨다.

그럼 신부님께서 생각하시는 원인은 어디에 있냐고. 나는 늘 생각하고 있던 부분에 대해 말씀드렸다. 성소를 가진 이들이 기쁘게 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그 뒤로 더 질문은 이어지지 않았다.

오늘날 교회 안의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원인을 분석한 자료들이 난무한다.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견해들과 통계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진짜 문제는 성소를 가진 모든 이들의 삶이 성소를 지향하는 이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교회 안에서도 봉사를 권유하는 일들이 점점 어려워지고 봉사자를 찾지 못해 일선의 사목자들은 많은 고민을 한다. 그런 현상을 앞에 두고 과연 공동체를 책임진 많은 이들은 단순히 요즘 삶이 팍팍해져서라고만 하며 스스로가 가진 원인은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앙이란 강요가 아니라 감동이라는 교황님의 말씀이 있다. 그 말을 되새길 때마다 사제 성소, 수도 성소, 혼인 성소를 가지고 사는 모든 이들의 삶이 과연 그 성소를 이어갈 세대에게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가지고 비칠까를 생각해야 한다.

교회가 하는 모든 성소 부족의 원인은 이렇게 저렇게 나열해 놓은 통계자료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소의 현장, 신앙의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신앙의 기쁨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서도 그 이유는 감춘 채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규율만을 강요한 채, 어떤 ‘일’을 하는 것만이 신앙생활이라는 건조한 기능주의만을 보여주는 것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체험한다. 언제나 그렇듯 근본적인 이유, ‘진짜’ 이유는 멀리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을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신 것은 ‘기쁜 소식’이었다. 그분께서 전하신 그 소식을 우리는 과연 정말로 기쁘게 전하며 살고 있을까. 그분을 체험한 모든 이들은 자신이 체험한 것들을 어떻게 해서든 전하고자 사방으로 퍼져 그 체험을 전했다. 우리의 신앙은 기쁜 소식을 가지고 파견되는 것이다. 우리는 파견되고 있는가, 아니면 집에 간다고 기뻐하고 있는가.

김우정 신부,(제1대리구 병점본당 주임)